[백장미 판사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인터뷰에서도 이미 언급했듯 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경험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새로운 분야, 도전을 즐기는 편이에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지식이 편중된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자기 분야는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문성이 길러지지만 새로운 분야는 따로 시간을 들이지 않는 한 관심조차 두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물체나 사회 현상을 볼 때 편향된 사고를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총’이라는 물체를 볼 때, 정치외교학과 학부생이었던 과거의 저는 ‘전쟁’을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형사 재판을 담당하는 현재의 저는 ‘살인의 증거’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요. 그래서 제한된 시간으로 다른 분야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대신 책으로나마 새로운 관점으로 사고하는 것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업무와 관련된 책 뿐 아니라 소설이나 과학 관련 서적, 역사책 등을 수시로 읽으면서 ‘경험주의자’의 삶을 놓지 않고 있어요. 아래 세 권의 책은 익숙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책들로 선정해 봤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이라는 생각에 서 한발 더 나아가, 세상에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눈이 멀어버려 사회 시스템과 정부 기관 등이 모두 파괴되고 인 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사회가 잘 발현된 소설이에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 지 못했던 주제였지만 결국 볼 수 있지만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사는 현재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소설 이었던 것 같아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지만 그 안에 우리가 놓치고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준 책입니다.

「열두 발자국」, 정재승
전형적인 문과형 사고체계를 가진 제게 꼭 필요한 책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목차를 보면서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먼저 상상 해보고 책을 읽었는데,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실험과 통계로 문제에 접근해 나가는 서술방식을 보면서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분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거나 그런 발상의 기회를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 하는 책입니다.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이 책은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가 주인공인 책이에요. 소설은 남편과의 냉전 상태에서 ‘백혈병으로 죽 어가는 소년에게 강제로 수혈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병원의 긴급청구가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소년의 운명이 한 사람인 피오나 판사의 결정에 달렸기에, 그 결정의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책이에요. 책을 읽기 전에는 별 고민 없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들이 가진 여러 문제로 인해 저 역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책이에요. 책을 읽으며 여러분이 만약 피오나 판사라면 어 떤 결정을 내릴지 한 번쯤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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