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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주의자', 따뜻한 판사의 길로 나아가다백장미 동문(정치외교 08졸)
이하린·한예진 기자  |  smplhl9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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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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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라며 후배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백장미(정치외교 08졸) 동문이 여성 군법무관 '최초'로 법관에 임명된 지 약 1년이 흘렀다. 지난달 4일(금), 본지 기자단은 백 동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변호사 합격 후 판사로 임용된 이후의 이야기까지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백 동문의 목표는 처음부터 판사가 아니었다. 백 동문은 “서울로 가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겠다는 목표만 있었죠”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부모님의 권유로 공무원이 되기 위해 본교 정치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엔 1학년 수업을 들어본 후, 정치행정학과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백 동문은 수업을 들어본 후, 정치행정학과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정치외교학과로 학과를 최종선택했다. 백 동문은 “정치외교학과 전공과목인 ‘전쟁과 평화’에서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제가 몰랐던 분쟁 지역에 대해 배우는 데 흥미를 느꼈죠”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재학 시절 다녀온 해외 봉사에서 전공인 정치외교학만으로는 특정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제가 약사였다면 의료봉사를 할 수도 있고, 예체능을 전공했다면 미술이나 피아노를 가르칠 수도 있었을 텐데, 전공인 정치외교학은 제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어 백 동문은 “이후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법학을 ‘한 번 배워보자’하는 생각에 3학년 2학기부터 본교 법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백 동문이 걸어온 '도전의 길'
백 동문은 학부 졸업 이후,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됐다. 백 동문은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가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는 사법고시를 오랫동안 준비하는 과정을 못 견디겠더라고요”라며 “3년간 수학하면 합격과 불합격이 정해지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른 길로 가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어요”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두 차례의 도전 끝에 지난 2010년 법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백 동문에게 법학전문대학원 생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동기들은 대부분 법대를 졸업했거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들어왔기 때문에 법 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어 백 동문은 정치외교학의 공부법과 법학의 공부법이 너무 달라 힘들었다고 전한다. 주로 이론을 통합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시험을 보는 정치외교학과는 달리 법학은 암기를 위주로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백 동문은 “법학 공부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 두꺼운 책 한 권을 통째로 암기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라며 “답안지를 쓰는 방법도 잘 몰라 교수님께 ‘이렇게 쓰면 채점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백 동문에게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생활은 마치 ‘고3 생활’과도 같았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생활에 대해 백 동문은 “밤에 공부하는 것은 제게 맞지 않아 아침 7시에 등교해 학교 열람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어요”라며 “오후 9시에는 공부를 정리하고 집에 가서 드라마를 보거나 일찍 자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백 동문은 “3년 안에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결과를 내야만 하기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정말 예민해져요”라며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기 어려워 외롭고 힘들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시절 법원 실무실습을 하며 법관을 꿈꾸게 됐다. 법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백 동문은 “실무 실습 당시 당사자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중재하는 판사의 역할에 매력을 느꼈어요”고 말했다. 법원은 독립기관으로 판사의 판결에 대해 누구도 지시하거나 명령할 수 없다. 부장판사 1인과 배석판사 2인으로 이뤄진 합의부도 직급에 크게 연연하기보단 상호 토론을 통해 합의를 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 의지를 피력해 논리적으로 이해를 시키면 제 의견이 얼마든지 받아들여지는 조직문화가 마음에 들었다”라고 말했다.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판사가 되겠습니다"
백 동문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군법무관에 지원했다. 군법무관에 지원하면서도 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재판연구원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것이 큰 계기로 작용했다. 백 동문은 “국가기관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군법무관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며 “멋있다는 막연한 생각도 영향을 줬죠”라고 말했다. 군법무관에 최종 선발된 백 동문은 2주 만에 입대했다. 그는 약 10주간 군 훈련을 받고 법무관 생활을 시작했다.

여중, 여고, 여대를 졸업한 백 동문에게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군대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백 동문은 “처음엔 남성의 심리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다”라면서도 “먼저 다가가고 편하게 생각하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스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군법무관 내 여성 비율이 늘어나면서 조직 문화도 여성 친화적으로 점차 변화해 군법무관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작년 10월에 발표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30.4%에 불과했던 여성 장기 군법무관의 합격자 비율이 2017년엔 68.1%까지 증가했다.

법무관 생활을 만족스럽게 하던 중, 백 동문은 마음속에 품어둔 판사의 꿈에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백 동문은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지 5년째 되던 해, 문득 이대로 살다간 수십 년 후에도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소령으로 전역한 후, 본격적으로 판사임용을 준비했어요”라고 말했다.

판사로 임용된 후의 일상에 대해 백 동문은 이전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백 동문은 오히려 군법무관 시절보다 시간 활용이 자유로워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백 동문은 “출근해서 판결문을 작성하고 사건 검토 후 부장님과 합의하는 게 하루일과의 끝이다”라며 “재판 일정에 맞게 제출해야 하는 판결문을 다 쓰면 언제든 퇴근할 수 있어요”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히려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시절보다 시간 활용이 자유로워 만족스러워요”라고 덧붙였다.

백 동문은 현재 형사합의부에서 배석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에겐 큰 책임감이 뒤따른다. 백 동문은 “확실히 유무죄가 갈리는 사건들은 판결하기에 어렵지 않은데 중간에 애매한 사건들은 판결을 내릴 때 어렵죠”라며 “유무죄 판결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어서 혹시 제가 빠뜨린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검토하죠”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법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접해보길 권한다. 백 동문은 “정치외교학을 배웠기 때문에 법 외에도 다양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백 동문은 “실제로 판사 실무를 할 때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단 합의나 양보도 시킬 줄 알아야 해요”라며 인간을 이해할 줄 아는 사회적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동문은 ‘흔들리지 말자’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판사 생활을 하고 있다. 백 동문은 “판사의 역할은 사건의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라며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만 결론은 명확히 내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백 동문의 꿈은 ‘사람을 이해하는 부드러운 판사가 되는 것’이다. 백 동문은 “사람들의 사소한 말 속에도 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대화를 꼼꼼하게 들어야 해요”라며 “남들보다 더 끈질기게 고민하고 집요하게 노력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백 동문은 “열심히 공부해서 10년 후엔 재판 당사자들도 ‘그래, 이 정도면 받아들여야지’하고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내는 판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백 동문이 법학전문대학원에 낙방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다. 주변에선 ‘왜 취업은 안 하고 법학전문대학원에 가려고 한대?’ ‘뭐하러 지방 법학전문대학원에 간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주변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 백 동문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판사로 임용됐다. 백 동문은 “저는 법과대학 학부생도 아니었고, 지방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누구도 제 꿈을 믿지 않았지만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꿈을 이뤘어요”라며 “때로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만 않으면 후회는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숙명인들도 하고자 하는 일들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성취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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