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꾹꾹 눌러 담아 떠났던 첫 유럽 여행.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처음 보는 음식들까지 필자의 한 달은 온통 설레는 것들로 가득 찼다. 딱 한 가지, ‘캣 콜링(Cat calling)’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그 한 가지는 설레는 기억을 까맣게 덮어버리기에도 충분했다. 첫 여행지였던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언니와 필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낯선 사람에게 캣 콜링을 당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모르는 남성이 20초에 한 번씩은 우리를 불러 세웠다고 할 수 있겠다. “니하오(nǐhǎo, 你好)” “안녕하세요”라며 말을 거는 것은 기본이었고, “밥 한 끼 같이 하지 않을래?” “내 가게에서 와인 한잔하고 가.” 등의 작업 멘트도 흔치 않게 들었다. 심지어 유부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 다른 도시에서는 술에 취한 남성이 “hi beauty?”라며 필자의 어깨를 붙잡아 세우기도 했다. 캣 콜링을 지겹게 들어 익숙해진 필자였지만, 누군가 어깨를 잡았을 때의 불쾌감과 공포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같이 여행을 떠난 언니에겐 정도가 더 심했다. 이에 분노하던 언니는 계속되는 캣 콜링에 “내가 너무 파인 옷을 입고 다니나?” “내가 너무 웃어줬었나?”라며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필자에게도 역시 ‘내가 만만하게 행동해서 이런 일을 당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말을 내뱉는 언니도 필자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사람들에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단지 만만한 동양인 여성일 뿐이었을 테니까. 마치 박물관의 전시품이 된 듯한 기분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끝도 없이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보고자 떠난 여행에서 다시 무기력함을 느껴야 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더 화가 났던 점은 모르는 나라에서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두려워 아무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아마 같은 상황에 다시 놓인다고 해도 필자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필자가 어떤 ‘대응’을 했을 때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왜 그들이 알면서 혹은 모른 채로 성희롱하는 대상이 필자여야만 하는지. 왜 필자는 분노하고 불안에 떨며 여행해야 했는지. 속에 담아둔, 하고픈 말들은 더 많지만, 다음 한마디로 이를 대신하려 한다.

필자는, 우리는 길거리를 자유롭게 누빌 권리가 있다.

글로벌협력 19 이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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