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 발표된 통계청의 ‘2018년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에서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역대 최저치인 61kg을 기록했다.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것은 8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진 경향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은 여전히 흔하게 사용된다. 밥이 우리네 정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이미영 주식회사 쿠첸(Cuchen, 이하 쿠첸) 밥맛연구소 파트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여성 엔지니어상을 수상했다. 밥맛연구소는 쿠첸이 최고의 밥맛을 내는 밥솥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본지는 쌀 소비량이 나날이 감소하는 현시대에 밥을 연구하는 이 파트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변화하는 시대, 한국인과 밥의 동행은 계속될 수 있을까?

밥솥에 전통을 담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밥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밥은 먹었어?’ ‘언제 밥 한번 먹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밥은 일상 대화에 빠지지 않는 주제다. 이미영 파트장은 “밥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이에요”라며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온 밥에는 친밀감과 편안함의 정서가 녹아 있죠”라고 말했다.
세상이 변해도 전통은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와 함께한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밥은 상차림의 기본 요소다. 이 파트장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최신 흐름을 반영한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요”라며 “변화하는 생활방식을 반영한 밥솥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하죠”라고 말했다. 가령 지난 1월 쿠첸(Cuchen)이 출시한 신형 밥솥 ‘IR味作 Clean Guard(IR미작 클린가드)’에는 냉동보관밥 알고리즘이 포함됐다. 해당 기능으로 소비자는 얼려 뒀던 밥이라도 갓 지은 듯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이는 최근 한 끼 분량으로 소분해 얼린 밥을 해동해 먹는 생활방식이 확산되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2009년부터 약 10여 년 간 밥을 연구해온 이 파트장에게 밥은 어떤 의미일까.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다. 이 파트장은 “일이 생활과 유사해서 일할 때 스트레스는 안 받아요”라면서도 “집에서도 일하는 느낌이라 편하지만은 않죠”라며 웃었다.
이 파트장은 밥맛연구소 알고리즘 파트에 소속돼 있다. 알고리즘 파트에선 돌솥밥, 가마솥밥 등 밥의 종류별로 달라지는 조리 방법을 표준화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밥을 짓는 다양한 방법을 기계 언어로 번역해 제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이 파트장은 “처음부터 밥을 연구하겠다는 대단한 포부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라며 “연차가 쌓이고 책임감이 커지면서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제품 제작에서 기초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지해주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어요”라고 덧붙였다.
가전 사업에 약 20년간 몸담아온 이 파트장의 대표적인 연구성과는 IR(Infrared Rays, 적외선) 센서를 적용한 밥솥이다. 지난 7월 이 파트장에게 대한민국 여성 엔지니어상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IR센서를 사용한 밥솥은 소비자가 제어할 수 없는 온도와 화력을 섬세하게 조절한다. 일반 찰진 밥도 맛있게 될 뿐 아니라 한 기기로 돌솥밥, 가마솥밥 등 여러 종류의 밥을 만들 수도 있다.

식품공학, 밥솥과 사람을 잇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이미영 파트장은 밥솥 개발에서 기계로서의 요소와 식품으로서의 요소를 잇는 교각 역할을 한다. 그는 “식품공학은 물리학, 화학과 같이 공학과 관련한 부분만이 아니라 재료학처럼 식품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포괄해요”라며 “융합적 성격의 학문이기에 밥솥의 공학적인 부분과 식품에 관한 부분을 연결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융합은 단순히 잘 작동하는 제품이 생활 속에서 실제로 필요한 기능을 갖춘 제품으로 탄생하는 핵심이다. 전자공학, 기계공학을 전공한 동료들이 하드웨어를 만들면 이 파트장을 필두로 한 알고리즘 파트 연구원들이 식품공학적 지식을 이용해 하드웨어에 적용할 알고리즘을 만드는 식이다. 밥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지식인 곡물 특징, 밥 불림 온도 등이 그 예다. 이로써 단순히 잘 작동하는 제품에서 생활 속에서 실제로 필요한 지식을 갖춘 제품이 만들어진다.
이 파트장이 속한 밥맛연구소는 제품이 소비자들을 만나기 전 거치는 가장 마지막 단계다. 그는 “이렇게 식품공학 지식을 통해서 공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실생활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저희가 제품 출시 전 마지막 단계에서 미리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거죠”라며 “그래서 더욱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일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파트장이 처음부터 식품공학 연구에 대단한 포부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IMF 세대라 취업에 대해 많이 걱정할 때여서 취업을 생각해 식품공학을 택했죠”라며 전공을 고른 계기를 설명했다. 이 파트장은 “학교 다닐 땐 ‘식품 공학 정말 잘 왔다’ ‘식품 공학이 내 체질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라면서도 “회사 가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이 파트장의 높은 전공 만족도는 주방가전 사업의 특성에서 일부 비롯된다.주방 가전 사업은 식품공학을 기반으로 할 뿐 아니라 기계공학, 전자공학, 심지어는 컴퓨터공학과도 연계된다. 이 파트장은 “식품공학 전공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 않는 길이라 더 즐거웠어요”라고 말했다.
이 파트장은 공학도를 꿈꾸는 숙명인들에게 외골수적인 면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는 “공학자 동료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공학자는 자기 분야에 대해 더욱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며 “공학자라면 자기 분야에 관해 깊게 알고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살아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학자 동료들 중 답답하다는 말을 들어도 끝까지 하는 사람이 끝에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선배의 조언 한 공기
이미영 파트장은 쿠첸 소속 밥맛연구소에서 알고리즘 파트를 이끌고 있다. 다년간의 직장 생활을 거치면서 그는 조직 관리에 필요한 그만의 원칙을 마련했다. 가령 조직 내 갈등 상황에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두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어 그는 “어디를 가도 모든 구성원을 완벽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죠”라며 “제가 정한 기준에만 맞게 살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회생활 선배로서 이 파트장은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은 전공 공부와 선후배관계에서부터 길러진다고 말한다. 회사 다니는 처음 몇 년 동안 전공 서적을 찾아봤다는 것은 그의 경험담이다. 이 파트장은 “색다른 분야로 갈 계획이 아니라면 선택한 전공에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며 “전공 분야의 선후배들에게 연락할 일이 생겨요”라고 덧붙였다. 지금 속해 있는 학과와 전공 분야는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리고 더 큰 사회로 나갔을 때 든든한 아군이 된다. 그래서 이 파트장은 “자기의 선택에 충실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당부한다.
이 파트장은 단 한 번뿐인 20대를 지내고 있는 숙명인에게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활동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는 “지금 젊은 친구들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며 “일 외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동료들을 지켜보니 깊이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있으면 일도 즐겁게 하더라는 것이다.
이 파트장은 스펙과 공부도 중요하지만 대학 때 실컷 놀아보라고 당부한다. 그는 “2개월, 3개월 놀았다고 ‘내 인생은 끝났어’ ‘나만 뒤처진 느낌이야’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제가 자주 하는 말이 ‘대학생들 정말 부러워’에요”라며 “소중한 시간 조금도 허투루 보내지 말고 무얼 하든 온 열정을 다해보세요”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신유학 철학자 왕수인은 사람의 마음이 곧 하늘의 이치라고 했다. 현장에서 활동 중인 연구자이자 사회생활 선배로서 이미영 파트장이 전하는 말도 그렇다. 이 파트장은 “지금 젊은 세대들은 놀랄 정도로 똑똑한데 마음이 단단하지 않아 안타까워요”라며 “해보고자 한 일에 비전을 갖고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뭉쳐진 굳센 마음으로 더 맛있는 밥을 연구하는 이 파트장처럼,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숙명인들의 마음도 든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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