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한때 청춘의 낭만을 그린 것들에 흠뻑 빠져 그것이 전부인 양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프기에 더 아름다운 청춘, 시리도록 빛나는 청춘의 이야기들을 동경했다. 허나 어느 날 필자는 깨닫게 됐다. 여성인 필자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걸 깨달은 후엔 꽤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이야기와 밤새워 읽었던 문장들은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재처럼 타버렸다.

남성중심적으로 짜인 문화 속에서 여성은 본인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서사에 더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여성 캐릭터도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화를 향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필자는 한때 사랑했던 이야기를 이전과 같이 즐길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한동안은 문학을 멀리했다.

“미친 사내가 쓴 글은 작품이고, 미친 계집이 쓴 글은 천박이니까.” 홍보물의 문구만 보고 두 달을 내리 기다린 뮤지컬 ‘경성광인’을 지난 21일, 우리 대학 섬김홀에서 마주했다. 중앙뮤지컬동아리 ‘설렘’의 제24회 정기 공연 경성광인은 필자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온전히 작품에 빠져들어 즐길 수 있었던 첫 뮤지컬이었다. 일제감정기를 배경으로 기존에 소외됐던 여성 독립운동가와 여성 문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극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도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펜을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금지됐던 그 시대의 여성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갔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극에서 필자는 견고한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에 의문을 던지고, 균열을 일으키다 반격을 당하고,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예전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편할 거라며 좌절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해낼 것을, 지치면 쉬어가되 절대 뒤돌아가지 말 것을 다짐하는 여성들을 봤다. 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그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끝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글의 힘을 봤다.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여성이기에 다른 여성을 이끌어줄 수 있다. 이렇게 뜻깊은 극을 세상에 내준 김해환 작가와, 전부 여성 주연으로 구성된 공연을 해준 설렘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미디어 18 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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