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전시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빼곡한 책장의 칸마다 다양한 사람의 방 사진이 전시돼있다. 어둠이 깔린 전시장엔 우주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관람객은 우주 비행사가 된 듯 타인의 방으로 착륙한다.
전시 ‘Fly Me To The #ROOM (플라이 미 투 더 #룸)’은 한 프리랜서 기자의 서울 속 ‘남의 방’ 여행담이다. 이곳엔 ‘서울에 사는 거주민’, ‘서울을 아낀 창작자’, ‘서울을 견딘 운동가’등 33명의 방이 입주해있다. 전시를 기획한 전유안 프리랜서 기자는 ‘오늘날 방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타인의 방문을 두드린다.


당신의 방은 어떤 곳인가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방들은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전 기자는 여러 사회 계층 사람들의 방을 찾아다니며 서울의 방을 ‘기억이 담긴 방’, ‘재산으로서의 방’, ‘최소기본권으로서의 방’으로 분류했다. 전 기자는 기억이 담긴 방과 최소기본권으로서의 방에 주목했다.
기억이 담긴 방
기억이 담긴 방에선 방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주인이 없는 방은 없다. 방의 주인이 세상을 떠나도 방은 옛 주인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다. 유관순이 투옥됐던 형무소의 방엔 어린 독립운동가의 한이 서려 있었고, 통의동 보안여관 방에는 그곳에 묵었던 문인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검은 벽돌의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는 지난 1987년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민주화 운동가가 마지막으로 머문 방이다. 4평 남짓한 비좁은 방엔 박 운동가를 고문하는 데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 침대, 욕조, 변기가 붙박이로 보존돼 있다.
한국의 문화를 지키고자 한 애국심이 묻어나는 방도 있다. 바로 미술사학자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 선생의 방이다. 한때 이곳은 최 선생이 별세한 후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이 방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800여 명의 시민들이 6개월 동안 약 8억 원을 모아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을 조성했다. 최 선생의 방은 사라지지 않고 ‘시민문화유산 1호’에 올랐다.
최소기본권으로서의 방
어떤 이에겐 방이 ‘사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방은 ‘사는 곳’이다. 방을 투자의 대상인 재산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겨우 구한 반지하 방이나 쪽방에서 탁한 공기를 마시며 새우잠을 잔다.
햇빛이 들지 않아 곰팡이가 묵은 이 방은 10살 김미영(가명) 씨의 방이다. 김 씨는 말을 할 때 3초마다 코를 킁킁거리고, 매일 아침이면 코피를 쏟으며 잠에서 깬다. 환기가 되지 않는 방의 공기가 김 씨의 호흡기를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전 기자는 김 씨에게 ‘불편한 것이 없나요?’라고 물었다. 비좁은 방에서 다리도 편히 뻗을 수 없고, 묵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도 김 씨는 ‘없다’고 답했다. 그 방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열악한 생활환경이 김 씨에겐 당연한 삶의 일부가 돼버렸다.
9평 남짓의 작은 방은 김진주 씨에게 다시 일어나기 위한 첫 단추다. 김 씨는 결혼 후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다 서울로 도망쳐왔다. 그러나 서울엔 김 씨 제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었다. 그렇게 2015년부터 1년 동안 노숙생활을 하던 김 씨는 쪽방촌의 중개로  3평 정도의 첫 방을 얻었다.
그러나 김 씨에게 첫 방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으로 남았다. 치안이 좋지 않기로 악명 높은 쪽방촌에서 보낸 밤은 악몽 그 자체였다. 남성들은 매일 밤 문을 두드리며 김 씨를 공포로 내몰았다. 김 씨는 “서울에 제대로 된 내 방 하나 없다는 것은 외계인처럼 우주를 떠도는 기분이었다”며 힘들던 과거를 회상했다.
다행히 김 씨는 2년 만에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구세군의 도움으로 지금의 방을 다시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의 방에서 과거 취미였던 인형 수집도 다시 시작한 김 씨는 비로소 외계인에서 벗어나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방’은 매우 은밀하고 사적인 곳이다. 자신의 방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도 꺼려지지만, 다른 사람의 방 안에 기꺼이 들어가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 기자는 타인의 방을 계속 두드리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공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전 기자는 수많은 지하 방과 쪽방의 주인들을 만나보고 어떤 사람도 본인이 미래에 그 방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반지하 방이나 쪽방에 들어갈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다. 전 기자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가 손을 잡아끌고 그 방을 나가게 해준 체험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방문을 연 숙명인
윤해은(화공생명공학 17)
“대전에 살던 저는 입시공부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한 번도 독립된 저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만을 위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에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지친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어깨를 주물러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저를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공허함에 펑펑 운적도 있습니다. 내 물건, 내 취향으로 가득 찬 독립적인 방을 꿈꿨는데 이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그것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방을 꿈꾸게 됐습니다.”
원성은(경영 19)
“저에게 방은 성장의 공간입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에 살고 있는데 공부나 과제도 하면서 빨래, 청소, 설거지 등도 제때 해야합니다. 처음에는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생활이 불안정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쓰는 등 스스로를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공동체를 벗어나 앞으로 살면서 펼쳐질 현실을 미리 경험하며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김제희(가명)
“저에게 방은 무거운 짐입니다. 침대를 둘 곳이 없어 겨울엔 외투로, 여름엔 담요를 깔고 잘 정도로 작고 초라한 방이지만 한달에 30만원을 내야 합니다. 관리비, 수도세, 전기세, 생활비도 필요합니다. 방세를 내는 날이 15일인데 돈을 보낸 다음날인 16일부터 다음달 월세 걱정으로 숨이 막힙니다.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서울에 왔습니다. 이제는 서울에 공부를 하러 왔는지,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송보윤(가명)
“저에게 방은 단절을 의미합니다. 3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부터 친척 집에 얹혀 살고 있습니다. 교류가 없던 친척이라 같은 공간에 사는 것은 매우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어느순간 방 밖으로 잘 나가지 않게 됐고, 친척 집에서 제 방은 완벽히 분리됐습니다. 가끔 방문 밖에서 들리는 가족들의 웃음소리나, 풍기는 맛있는 음식냄새가 저를 더 외롭게 합니다. 독립을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방은 단순한 물리적 주거 공간이 아니다. 방은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담은 곳이다. 누군가에게 방은 안락하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방이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공간이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불편하고 외로운 공간이다. 방에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타자에게 새로운 방을 제공해주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작은 도움은 줄 수 있다. 기꺼이 다른 사람의 방으로들어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혹시 당신의 방이 현재 위태롭다면 방 문을 열어두라. 그러면 반드시 누군가 당신의 방으로 들어와 손을 잡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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