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0월 14일(금), 서울대학교에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습니다’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의 필자는 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공현(본명 유윤종·31) 활동가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왔고, 대학 자퇴 후엔 대학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기존의 교육 체제에 질문을 던진 청소년인권운동은 공현 활동가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고, 그가 바라보는 오늘날의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대학 거부자는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대학 진학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는 경우다. 지난 2006년 공현(유윤종·31) 활동가는 대학 진학 여부에 관한 고민을 끝내지 못한 채 대학생이 됐다.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사회 운동은 공현 활동가의 흥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대학에선 제가 관심을 두고 있던 학력 간 차별 문제보다 민족주의와 같은 의제가 주로 다뤄졌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 운영에 학생이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는 활동도 청소년인권운동과 맥락이 같아요”라며 “당시 대학 내부에선 대학생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공현 활동가는 결국 대학을 자퇴했다. 그는 대학의 정체성에 회의를 표하며 “대학교는 그저 고등학교보다 높은 학력을 제공하는 기관처럼 보였어요”라고 말했다. 공현 활동가가 서울대학교 자퇴를 선언하자 언론은 앞다퉈 대학 거부 운동을 보도했다. 언론은 대학 거부 자체보다 서울대 학생이 대학을 거부한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했다. 학력 차별을 비판하는 대학 거부 현장에도 학벌주의의 모습은 깊게 남아있었다. 
학벌주의의 바탕엔 성과주의가 존재한다. 공현 활동가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우대해야 하고, 그들이 소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대학 서열화를 더 공고히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사회에서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 아닌 사회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가야만 하는 곳이 될 수밖에 없죠”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공현 활동가는 대학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학문이나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기관은 있어야 해요”라며 “전문적인 배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대졸 학력을 얻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많아서 문제죠”라고 말했다. 
한국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사회 인식이 존재한다. 공현 활동가는 “누구나 자신이 원할 때 학문이나 기술을 배울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시기가 꼭 고등학교 졸업 직후일 필요는 없어요”라며 “대학 진학 여부와 시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 지난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해당 단체는 청소년이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가 경찰 조사를 받은 사건을 비판했다.

공현 활동가는 청소년기부터 사회가 부당하다고 느꼈다. 그는 “교사와 선배에 의한 체벌에 반대하는 전단을 교내에 돌리다 벌점을 받은 적도 있어요”라며 “청소년 인권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사회 운동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죠”라고 말했다. 
지난 2005년 5월 열린 ‘고교 내신등급제 반대 및 두발 자유화 집회’는 그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민운동 이외의 사회 운동을 접할 일이 없었어요”라며 “집회를 계기로 사회 운동을 하는 단체를 알게 됐죠”라고 말했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공현 활동가는 전주시의 청소년인권운동 단체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없으면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교내 모임을 만들었죠”라며 “모임에서 중고등학교 두발 자유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집회 소식을 접한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이하 아수나로)’는 이들에게 집회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때 공현 활동가와 아수나로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지난 2006년 아수나로의 공식적인 출범에 함께하며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인권운동에 힘썼다.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요 의제는 선거 가능 연령 하향을 통한 청소년의 참정권 요구다. OECD 회원국 36개국 중 34개국이 만 18세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으나 한국은 만 19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다. 선거 참여를 통해 청소년은 자신의 권익을 더욱 큰 목소리로 요구할 수 있지만 19세 미만의 한국 청소년은 투표권이 없는 실정이다.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어른’의 문제에 밀려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청소년 참정권 논의는 1990년대 시작됐으나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소년 선거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공현 활동가는 “정치인들도 겉으로는 청소년인권운동 의제에 찬성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관련 법안을 추진할 의사는 없어 보였어요”라며 “청소년인권운동이 사회나 언론, 정치의 논의 대상에서 미뤄질 때 힘이 빠지죠”라고 말했다. 
 

▲ 이번 해에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활동가들이 스쿨 미투(#MeToo)를 지지하는 팻말을 든 모습이다.

대부분의 청소년 단체는 형성된 지 3, 4년 만에 사라지곤 한다. 청소년기에 일시적으로 활동했다가 운동 단체를 떠나는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공현 활동가는 “청소년인권운동의 기반이 약할 뿐 아니라 성인이 된 후 운동에 대한 기존 활동가들의 관심이 줄어들기도 해요”라며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은 이별에 익숙해지는 운동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기록하는 일은 청소년인권운동의 미약한 기반을 다지기 위한 첫걸음이다. 공현 활동가는 「소년소녀, 정치하라!」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으며 최근엔 ‘교육공동체 벗’의 출판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이어 그는 “시민운동과 달리 청소년인권운동은 오랫동안 활동해온 상근자가 부족해요”라며 “아직 출범 전인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이하 지음)에서 청소년 인권운동가를 양성해 대중적인 조직을 만들고자 해요”라고 밝혔다.
공현 활동가는 청소년 인권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지음은 시민 단체 300여 곳이 모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해당 연대체와 함께 만 18세 선거권 보장을 위한 청년과 청소년 1만 명의 서명을 모으고, 지난 3월 6일(수) 국회에서 선거연령 하향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청소년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은 청소년의 일상을 바꿀 수 있다. 지난 2010년 경기도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후, 경기도 소재 초·중·고등학교에선 직간접적인 체벌, 복장 및 두발 규제, 학생 소지품 검사 등이 금지됐다. 공현 활동가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홍보 운동을 하던 때 당시 겪은 일이 기억에 남아요”라며 “경기도에서 온 한 학생이 ‘경기도에 학생인권조례가 생겨 두발 규제도 사라지고 교육 환경이 개선됐다’며 음료수를 주고 간 적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인권운동을 통해 학생들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단 말을 들을 때 하루하루가 보람차죠”라고 답하며 청소년인권운동에 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잘못된 기차에 올라탔다면, 복도의 반대 방향으로 뛰어봐야 소용없다.’ 파시즘(Facism)의 광기로 휩싸인 독일 사회에서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가 한 말이다. 서열을 조장하는 교육 체제가 잘못된 기차라면 공현 활동가는 기차에 머무르기를 거부함으로써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섰다. 기차로 대표되는 사회 시스템에서의 하차는 개인에게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불합리한 체제에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세상의 부조리를 없애자고 소리치는 공현 활동가의 용기 있는 행보를 응원한다.

 

*본 기사에선 학교 안과 밖의 청소년을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 용어로서 ‘청소년’을 사용했습니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