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A씨는 극심한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괴롭힘을 못 견딘  A씨는 학교를 자퇴했지만 가정도 도피처가 되지는 못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머니와 A씨를 때렸다. 결국 A씨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으나 미성년자였던 A씨에겐 그마저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A씨는 우연히 ‘랜덤채팅(Random Chatting)앱’을 접하게 됐다. 숙식과 용돈을 제공해주겠다는 말에 솔깃한 A씨는 랜덤채팅 속 남성을 실제로 만나게 됐다. A씨를 만난 남성은 돌변해 갑작스레 성관계를 강요했다. 공포를 느낀 A씨는 마지못해 성매매에 응한 후 대가를 받았지만 그 후 계속된 성관계 요구는 거절했다. 그러자 남자는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응하면 처벌을 받는다며 도리어 A씨를 협박했다.

A씨의 경우 성관계의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상 ‘대상 *청소년’으로 분류돼 ‘보호처분’을 받는다. A씨의 경우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가출 청소년이 많다.


성매매에 노출된 여성 가출 청소년
랜덤채팅 앱은 사실상 여성 가출 청소년과 성매수자를 연결해주는 ‘포주’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매매에 가장 많이 이용된 경로는 랜덤채팅 앱으로, 전체 중 약 70%를 차지했다. ‘관악구 여중생 살인사건’ ‘하은이 사건’ 등 실제로 여성 가출 청소년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사건들은 모두 랜덤채팅 앱을 통해 이뤄졌다. ‘하은이 사건’은 랜덤채팅에서 만난 6명의 남성이 당시 13살이던 지적장애인 하은이(가명)를 성폭행한 사건이다. 법원은 하은이가 랜덤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으로부터 치킨과 떡볶이를 얻어먹었다는 이유로 이를 성매매 사건으로 단정지었다. 인권 단체는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본교 김용화 법학부 교수는 해당 판결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기존 관례대로 사법부가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민은 “피해자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성매매로 단정 짓는 것은 억지다”고 말했다.

지난 달 17일(토), 본지 기자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성매매가 랜덤채팅을 통해 이뤄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임의로 5개의 랜덤채팅 앱을 설치하고 2주간 사용해봤다. 랜덤채팅 앱은 별도의 본인인증 절차 없이 성별 및 나이 등 간단한 신상 정보만 설정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본인인증 절차의 부재는 성매매 알선을 요구하는 남성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대부분의 랜덤채팅 앱은 채팅창 상단에 ‘아동과 청소년 대상 성매매는 불법이며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할 경우 형사 처분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지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본지 기자가 ‘19세, 여성’으로 신상을 설정한 뒤 자기 소개란에 ‘집을 나왔다’고 적자 수십 개의 조건 만남을 요구하는 남성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들은 적게는 한 번에 5만원부터 많게는 한 달에 300만원까지 제시했다. 미성년자임을 밝히며 조건만남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자, 상대방은 심한 욕설을 하거나 연애를 하자는 것뿐이지 조건만남이 아니라며 본지 기자를 회유했다.

한편 아청법에 명시된 대상 청소년 개념 삭제에 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상 청소년이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청소년으로,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는다. 보호처분이란 감호위탁,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을 일컬으며 범죄를 저지른 아동이나 청소년에게 내려지는 처분의 일종이다. 랜덤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한 10대 여성 대부분은 대상 청소년으로 분류돼 보호처분을 받는다. 여성 가출 청소년이 직접 앱을 설치하고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상 청소년의 개념은 대상 청소년과 피해 청소년을 구분함으로써 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보호한다는 아청법의 입법 목적과는 대치된다. 지난해 8월, 아청법의 입법 목적과 대상 청소년 개념 간 괴리를 좁히기 위해 대상 청소년 개념을 삭제하기 위한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표 발의자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성구매자의 대상이 되는 아동과 청소년도 명백한 성착취의 피해자다”고 말했다. 이어 남 의원은 “아동과 청소년이 보호처분을 처벌로 인식하기 때문에 피해를 받음에도 신고를 못하게 된다”며 “오히려 성매수자가 이를 악용해 아이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하은이 사건’이 성폭력 사건에서 성매매 사건으로 전환되자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지원을 받았던 기관으로부터 모든 지원이 끊겼다. 대상 청소년은 정부의 보호에서 배제되고 보호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들 때면 ‘이곳’을 찾으세요. 
여성 가출 청소년의 성매매 유입을 막고 탈성매매를 돕기 위해선 성매매의 수요 근절을 위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 교수는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기 때문에 수요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성매매를 근절하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최근 성매매의 수요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 중 하나로 노르딕(Nordic)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 노르딕 모델은 성매수자와 알선자를 처벌하고 성매매된 자는 처벌하지 않는 정책으로, 스웨덴을 중심으로 북유럽에 도입된 제도다. 이 외에도 여성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매매의 악순환을 막고자, 여성 가출 청소년의 재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서울특별시 차원에선 여성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재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선 청소녀(女) 건강센터 ‘나는봄’과 ‘소녀돌봄약국’, 서울시립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를 통해 여성 가출 청소년에게 의료, 교육, 심리적 지원을 한다. ‘나는봄’은 건강이 취약한 여성 가출 청소년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를 담당한다. ‘소녀돌봄약국’은 한국여약사회와 연계해 여성 가출 청소년에게 의약품 지원 및 의료 상담을 하고 있다. ‘나무’는 일시적인 숙식을 제공하고 진로 및 심리상담을 한다. 만약 장기간의 보호가 필요한 여성 가출 청소년의 경우 나무가 서울권 내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 시설’에 연계하기도 한다. 해당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심효진 늘푸른여성팀 주무관은 “여성 가출 청소년들이 더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십대여성인권센터 산하 통합지원센터는 하나의 기관에서 여성 가출 청소년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통합지원센터에선 의료, 법률, 심리에서 전문가 집단을 섭외해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명시하는 아청법 제48조 1항에 근거한 상담소로 등록되지 못해 법적,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모든 사업이 프로젝트 형태로 이뤄져 재정난과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를 운영하고 있는 조진경 대표는 “법에 근거해 여성 가출 청소년 지원사업을 유지하고 직무 안정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 밖의 집’
안전한 사회가 되려면
여성 가출 청소년의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무조건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친족성폭력 등 가출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정으로의 복귀는 그들에게 두 번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 가출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법과 제도에 반영되는 사회적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 조 대표는 “10대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 시선이 가장 문제다”고 말했다. 성매매의 다른 말은 ‘지불된 강간’이다. 성매매를 당사자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바라보는 행위는 성매매의 폭력성을 은폐한다.

성매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10대 성매매 여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성매매 여성에게 찍히는 사회적 낙인은 성매매 여성을 더 음지로 밀어 넣어 그들이 외부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무’ 측은 “성매매 및 성폭력에 노출된 10대 여성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성매매나 성폭력을 본인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가부장적 여성관이 내면화된 것이다. ‘나무’에선 여성 가출 청소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기 위해 성폭력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여성 가출 청소년의 자아관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는 성교육 이외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활동이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선 여성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체험과 표현예술치료를 한다. 조 대표는 "표현예술치료는 언어 발달 과정이 생략돼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가출 청소년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여성 가출 청소년에게 기관이 손을 뻗기 위해선 그들과 마주해야 한다. 관련 기관에선 주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여성 가출 청소년과 접촉하기 위해 현장 지원 활동을 나간다. 현장 지원 활동이란 실무자와 활동가가 청소년 밀집지역으로 나가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것을 뜻한다. ‘나무’ 측은 “현장 지원 활동에선 청소년들에게 홍보지와 양말, 생존키트 등의 물품을 제공하거나 거리 상담을 진행한다”며 “일시지원센터의 경우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즉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장 지원 활동은 청소년에게 대안문화활동을 제공하는 기능도 겸한다. 현장 지원 활동 봉사자로 활동한 익명의 학우는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문화를 충분히 즐길 공간이 부족하다”며 “현장 지원 활동에선 건전한 놀이문화 형성을 위해 보드게임을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성 가출 청소년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단발적인 관심에 그쳐선 안 된다. 사회와 단절된 여성 가출 청소년의 정서적 취약성을 노리고 접근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서울위기청소년교육센터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거절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여성 가출 청소년에 대한 법적 및 제도적 차원의 안전망이 충분히 마련될 때까지 여성 가출 청소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이어져야할 것이다.

*본 기사에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 19세 미만의 자를 청소년이라 칭한다. 다만, 19세에 도달하는 연도의 1월 1일을 맞이한 자는 제외한다.

▲ 모 랜덤채팅 앱에서 한 남성이 본지 기자에 조건만남을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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