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같은 유치원을 나와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중학교를 거쳤다. 내가 유학길에 올라야 했기에 고등학교 때 우리는 처음으로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항상 너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린 대학교 등굣길까지 함께하게 됐다. 너와 같은 대학교에 간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우리 둘은 정말 운명이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소름이 돋았다. 너 또한 그런 것 같았다. 너와 같이 숙대 맛집에 가고, 너와 같이 숙대 카페에 가고, 한 학기가 지나 우리가 같은 교양수업을 들었을 때야 실감이 났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라는 것이.
우리 엄마, 너의 엄마, 나, 그리고 너. 함께 라오스에 가기로 했다. 최근에서야 여행 동영상 만들기를 끝냈는데, 솔직히 유명 관광지, 신나는 활동, 특이한 음식은 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한테는 우리 엄마, 너의 엄마, 나, 그리고 너와 함께 했다는 사실이 의미가 컸기에 사실 장소도 거리도 나에겐 중요치 않았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을 꼽으라면 너와 버기카(Buggy car)를 타고 블루라군(Blue Lagoon)에 갈 때였다. 너의 운전 실력 덕에 내 팔에 소똥이 튀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동화에 나올법한 풍경,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는 동물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었던 그때 기억이 이제 ‘여행’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를 장면이 된 것 같다. 우리가 지금 함께여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기분 좋은 바람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또 떨어지게 됐다. 너는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숙명을 떠나게 됐고, 나는 나의 꿈을 위해 숙명에 남게 됐다. 그래도 숙명인이라며 멋쩍게 이야기하는 너를 봤을 때야 실감이 났다. 유학으로, 입시로, 연락이 뜸해졌을 때도, 서로가 바빠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서로의 얼굴을 잘 보지 못했을 때도 우리는 서로의 생일엔 잊지 않고 손편지를 챙겼고, 초등학교 때 교환한 서로의 전화번호는 잊지 않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나는 너의 집 앞 문고리에 손편지와 생일선물을 걸어두는 게 이제는 연중행사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조용히, 꾸준히 서로의 옆을 지켜왔다. 이제는 함께 다녀온 여행의 추억이 서로의 기억에 더해질 것이다. 이 시점에 나는 다짐한다. 우리는 지금처럼 함께하자고.
다음번엔 우리 둘이 여행 가자던 약속 지키기로 약속하자. 앞으로도 너는 내 숙명이고, 나는 네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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