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가 이뤄졌다. 66년 그 긴 시간 동안 낙태는 ‘죄’였고 그 무게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특정성별에게만 책임을 묻는 이 상황이 왜 당연하게 합헌이었을까. 임신이 여성 혼자서 가능한 일이었던가? 남성은 어디 있나. 생명의 중요성을 왜 피해자인 여성에게 묻는가.

낙태죄의 위헌성을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낙태죄 처벌 조항인 형법 269조와 270조에 관한 헌법소원 재판관 헌법불합치(4명), 단순위헌(3명), 합헌(2명)의 의견을 냈다. 낙태죄 합헌을 판단한 조용호, 이종석 헌법재판관은 "낙태죄 규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지만 그 정도가 낙태죄 규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단어는 ‘중대한 공익’이다. ‘공공의 이익’은 ‘태아의 생명보호’로 해석된다. 아직 세포덩이에 불과한 것이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한 사람보다 공익이 된다. 누군가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공익을 논하는 것은 좀 민망하지 않은가. 무엇이 공공의 이익인가. 공공(公共)은 ‘공평한 함께’라는 뜻으로, 사전에서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 두루 관계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에서 여성은 지워졌다. 단어의 정의부터 잘못됐는데 당당히 ‘공익’이라는 말을 쓰는 그대여, 부끄러워하라.
 

다시 돌아와서,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근거는 ‘세포가 인간이 될 가능성’에 뿌리를 둔다. 가능성의 결정권을 사람이 아닌 배아에 주고 있을 것이다. 여성은 사람이다. 세포덩이는 고통조차 못 느낀다. 배아는 사람이 아니다. 과학이 그렇게 말하는데 왜 배아를 생명이라고 정의하는가. 낙인찍기를 멈춰라. 여성탄압을 멈춰라. ‘자신의 몸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가 왜,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가.
 

지난 15일 국회에서 인공임신중절죄 폐지 1호 법안이 나왔다. ‘낙태’란 명칭 자체에도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명칭을 정정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여성에 관한 당연한 권리들이 이제야 하나씩 만들어질 것이다. 임신중절약에 대한 법안도, 계획도.
 

더불어 현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규탄한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착각하지 마라.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신 판단하는 건 숭고함이 아닌 우스운 일이다.
 

한국어문 17 박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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