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15(한길사, 1995-2007)

1995년 9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제1권(‘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이 국내에서 처음 번역, 소개됐다. 12년이 지난 올 2월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제15권(‘로마세계의 종언’)이 마침내 완역됐다. 그동안 다양한 독자층을 끌어들이며 역사와 문명에 대해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켜왔던 이 책은 2006년까지 약 200만부 이상이 팔린 서점가의 스테디셀러이자, 인문학의 위기 담론 속에서도 역사학의 대중화에 물꼬를 튼 대하역사평설(歷史評說)로 자리 잡았다. ‘제1회 한국번역대상 수상’, ‘한국의 지성인 30명이 권하는 교양필독서’, ‘국내 CEO 100인이 사회초년생에게 권하는 10권의 책’,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 1위’, 그리고 우리학교 도서관 대출순위에도 상위권에 선정될 정도로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그토록 열광하는 로마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조그만 도시국가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마침내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고 대제국을 천년이상 지속시킨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 책은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할 때부터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에 이르는 시기를 제1-5권까지의 ‘융성기’, 제6-10권까지의 ‘안정기’, 제11-15권까지의 '쇠퇴에서 멸망’의 세단계로 나누어 1300년에 걸친 로마사의 흥망성쇠를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민족인 로마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로마의 성공비결을 로마인들 특유의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관용정신과 개방성이 공존공영의 정신에 의한 다민족 운명공동체를 낳았고, 시민성에 바탕을 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지도자집단의 역량이 로마를 보편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사실 로마는 라틴족으로만 구성된 도시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을 통합해 이룩한 세계제국이었고, 단순히 정복을 통한 제국의 건설이 아닌 다양한 역사와 민족성, 상이한 발전 수준과 국력을 지닌 1000개 이상의 나라를 로마라는 이름아래 통합해 공존시켰으며, 뛰어난 한 개인보다는 국가유지에 헌신적인 많은 인물, 즉 시민과 집정관들이 바로 로마 힘의 원천으로 이들에 의해 움직여진 조직적인 국가운영체계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성공비결은 간결하면서도 선명하고 박진감 넘치는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글의 형식에 있어서 기존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소설, 즉 역사소설과는 차별화되는 통사류에 가까운 서술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자 탁월한 오락이다”, “역사는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아니고, 케케묵은 것도 아니며, 자신들이 태어난 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며, 그것을 아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역사가들이 쓴 역사책들이 현학적이고 딱딱한 반면, 아마추어인 저자는 전문역사가들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오락적이면서, 소설형식보다 더 많은 역사지식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강한 흡인력을 발한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역사책도 재미와 오락성을 가질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역사학의 대중화에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책의 성공비결은 일반 독자들보다 정・재계에서 먼저 시작된 ‘로마인 이야기 증후군’을 들 수 있다. 당시 몇몇 일간지의 기사내용을 보면 “재계와 정부부처에서는 ‘로마학습’이 한창이다. 유수한 경영인은 물론 고위 공무원까지 나서 로마를 배우느라 삼복더위도 잊고 있다”(1996년 8월 12일자 한국일보)든가, “삼성물산 전략경영 팀은 최근 시오노 나나미의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에서 6가지 세계정복비결을 뽑아내 임직원들의 경영활동에 적극 응용하고 있다”(1996년10월 23일자 동아일보)면서 로마의 성공비결을 벤치마킹하려는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아마추어와 전문가 사이에서 빛나는 작가로서의 개인적 역량을 들 수 있다. 그는 “확실한 사료의 뒷받침이 없으면 다룰 수 없는 학자나 연구자와는 달리, 우리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자유롭게 추측하고 상상하는 것도 허용된다”라면서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자처하고, 대중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오락적인 역사책을 쓰고자 노력하였다. 기존의 전문역사가들에게 아마추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전문역사가들이 접하는 기본사료를 두루 섭렵하고 분석해 허구(fiction)보다는 사실(fact)에 더 비중을 두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자신의 글에 적절한 권위를 부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저자의 로마 역사에 대한 맹목적인 호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리스나 카르타고와 같은 다른 주변국들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인지 이들 역사와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사실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가시처럼 보인다. 가령 민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자유보다는 질서를, 내분보다는 화합을, 시민의 덕보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더 가치 있게 평가하고, 시민의 자유를 희생시켜 카이사르가 구현한 새로운 지도력을 ‘위대함’의 증거로 보는 맹목적 영웅찬가는 저자가 ‘시민의 자유’라는 관념보다 ‘제국’이라는 현실에 더 매력을 느꼈던 철저한 현실주의자라는 점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로마인 이야기>는 1500년이라는 시공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현대 문명에 대한 함의로 가득차있다. 9ㆍ11테러사건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종교와 문명의 충돌은 민족ㆍ문화ㆍ종교의 차이를 넘어서서 지중해 전역을 통합하는 ‘보편제국’을 실현했으나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던 로마의 운명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현대판 로마제국으로 비유되는 미국의 일방주의 앞에서 한 민족의 흥망성쇠를 통한 ‘성자필쇠(盛者必衰)’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김질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문지영(숙명여대 인문학부 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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