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는 벽 신문의 다른 말로, 개인이나 단체가 사회 전반이나 특정 기구에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다. 대자보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비판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만 최근 대자보에 대한 비방과 훼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본지는 대자보 작성 및 훼손에 대한 숙명인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7일(화)부터 9일(목)까지 숙명인 5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신뢰도 95%, 오차범위 ±4%p).


대자보, 마음대로 써도 될까?
지난 6일(월), 제51대 총학생회 ‘오늘’은 본교 공식 커뮤니티 ‘스노위(SnoWe)’를 통해 대자보 작성 및 게시에 관한 규칙을 수립할 예정임을 알렸다. 본지 설문조사 결과, 숙명인 498명 중 72.9%(363명)는 대자보 작성 및 게시에 관한 법적 규제가 존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우는 “개인이나 단체의 의사 표출 자유는 공공의 질서를 해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돼야 한다”며 “대자보 역시 의사 표출의 한 창구로서 대자보가 공공의 질서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대자보에 작성 단위와 철거 기일 명시, 훼손 금지 등의 규칙이 새로 수립될 예정이다. 숙명인 536명 중 42.9%(230명)는 대자보에 작성자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고 응답했다. 연사랑(생명시스템 18) 학우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 규제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렵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규제 기준을 정하지 못한다면 규제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자보 작성 및 게시 규칙에 관한 논의는 대자보가 등장한 이후로 계속 진행됐다. 지난해 3월 21일(수),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의 대자보 게시를 불허한 모 중학교 교장에게 학교생활 규정에 교내 게시물 기준을 정할 것을 권고했다. 대자보와 같은 교내 게시물은 정보전달, 의견 교환 등 학교생활의 중요한 소통 수단으로 헌법 제21조와 국제 연합(United Nations, 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의해 게시가 불허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강제력을 행사해 대자보를 게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자보의 순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면서도 “사실관계에 입각하지 않은 악의적인 대자보를 방지하기 위해선 작성 단위를 게시해 추후 교섭을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자보에 관한 규제는 대학 내 게시판에 부착된 것에 한해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 본교의 경우 구성원이 대자보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자유를 인정해 철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대자보 게시 시 본교의 허가가 필요치 않다. 중앙대 역시 대자보 게시 시 학교 측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혐오로 얼룩진 대학의 얼굴
대자보는 대학이 교육의 장이자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의 장임을 상기시켜 준다. 학내 대자보에 대한 훼손과 비방은 대학이 본연의 사회적 역할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8일(수) 기준, 본교 명신관 앞 게시판에 부착된 15개의 대자보 중 훼손된 것은 4개다. 타 대학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중앙대 반성폭력반성매매 모임 ‘반反’에서 활동 중인 신지영(여·23) 씨는 “4월 초 단체의 출범을 알리고 학내 여성 혐오 역사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게시한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훼손됐다”며 “최근에 부착된 다른 대자보 역시 훼손됐다”고 말했다. 신 씨는 “여성주의 연대 내부에선 이러한 행위에 분노하며 대자보의 내용에 동감한다”면서도 “다수가 여성 혐오에 일조하고 대자보 훼손에 무관심한 학내 분위기로 인해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여러 번 조롱을 당했다”고 말했다.

본지 설문조사 결과, 대자보 훼손에 관한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과 관계없이 대자보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는 다수가 동의했다. 숙명인 486명 중 78.8%(383명)는 대자보 훼손을 규제하는 법 조항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우는 “대자보 훼손은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다”며 “본인과 대자보 작성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대자보 훼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연 학우는 “혐오 표현이 붙은 대자보를 훼손함으로써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자보 훼손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본교에는 대자보 훼손을 제한하는 별도의 규칙은 마련돼 있지 않다. 중앙대 역시 대자보 훼손자를 처벌하는 규칙은 없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대 학생지원팀 담당자는 “대자보의 재산권은 대자보 게시자에게 있기 때문에 대자보 훼손 시 손괴죄가 성립돼야 학교 차원의 징계를 할 수 있다”며 “교육 기관인 대학에서 처벌 규칙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본교는 이번 학기 초부터 대자보 훼손에 대한 제재를 포함해 대자보에 관련된 규칙을 준비하고 있다. 본교 정혜련 학생지원센터장은 “학교 내부에서 대자보에 관련된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규칙을 마련하게 됐다”며 “규칙의 세부 내용은 논의 중이며, 수립 과정에서 총학생회나 학생들의 의견도 최대한 포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학내 게시판, 무법지대 아니에요
대자보에 관련된 법적 규제에 대한 숙명인의 인지 정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숙명인 498명 중 92.6%(461명)가 대자보 작성 및 게시에 관련된 법적 규제를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다. 김슬기 대전대 법학과 교수는 “대학 내 게시판에 부착된 대자보는 공중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장소에 노출돼 있는지에 따라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의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은 옥외 광고물의 정의, 광고물의 제한, 적용 배제, 위반에 대한 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 제2조 1항에 의하면 옥외 광고물이란 공중에게 항상 또는 일정 기간 계속 노출돼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간판, 디지털광고물, 선간판 등과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뜻한다. 김 교수는 “대자보에 법을 적용할 경우엔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 제2조 2항에 따라 정치 활동의 자유 및 그 밖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자보는 작성자 명시 여부와 관계없이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지만 대자보의 내용에 따라 작성자가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 김 교수는 “대자보 작성자가 대자보의 내용으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는 대표적인 경우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있다”며 “두 범죄 모두 공연성을 요건으로 하며 대학 내 게시판에 부착된 대자보는 공연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대자보 내용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특정 사실을 적시할 경우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며 추상적인 모욕적 표현일 경우엔 모욕죄에 해당한다”면서도 “대자보가 진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될 경우엔 위법성이 배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숙명인 489명 중 90.8%(444명)이 대자보 훼손에 관련된 법적 규제를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다. 대자보를 훼손할 경우엔 학교의 교칙과 별개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자보는 대체적으로 형법상 손괴죄의 객체인 ‘타인의 재물 또는 문서’로 인정된다. 김 교수는 “손괴죄의 경우 범행 주체가 내부인인지 외부인인지는 범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교에서 논의 중인 대자보 관련 규칙엔 대자보 훼손을 제재하는 규정이 포함돼 있으며, 해당 규정에서도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대자보의 물리적인 훼손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자보를 비하하는 경우도 처벌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비하의 내용을 확인해야 실제 범죄가 성립하는지 알 수 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자보를 비하하는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의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형법상 모욕죄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같이 소규모 공동체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바람직한 공동체를 위해선 자유로운 의사 표출과 이를 바탕으로 한 원활한 의사소통이 보장돼야 한다. 구성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사회적 갈등 해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대자보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함으로써 더 나은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며 “의사 결정 과정이나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건전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본교 명신관 앞 게시판에 대자보가 훼손된 채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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