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화)부터 7일(목)까지 3일간 본지는 숙명인 573명을 대상으로 식품 유통기한과 관련한 경험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신뢰도 95.0%, 오차범위 ±4.0%p). 조사 결과, 평소 식품 구매 시 유통기한을 고려하는 응답자는 86.2%(494명)로 나타났다. 이처럼 유통기한은 식품 구매와 섭취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진다. 유통기한은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지는 걸까.
 

식품 유통기한, 이렇게 정해요
국내에서 식품 유통기한은 흔히 제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한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최종기한을 의미한다. 김소은(IT공학 18) 학우는 유통기한에 대해 “식품에 적힌 날짜가 지난 후 해당 식품을 먹으면 탈이 날까 우려된다”며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바로 버린다”고 말했다. 적절한 환경에서 보관된 식품은 유통기한의 최장 약 40%가 지나도 섭취할 수 있다. 이처럼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과 안전에 문제가 없음을 인정하는 최종 날짜는 소비기한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식품 유통기한 설정을 전면 자율화하고 있다. 반면 정확한 유통기한을 설정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해 2006년부터 신규 품목 제조 보고 시 유통기한 설정 사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규칙이 마련됐다. 

유통기한 설정실험은 식약처에서 발표하는 지침에 따라 이뤄진다. 지난해 식약처에서 발표한 「식품, 축산물 및 건강기능식품의 유통기간 설정실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유통기한을 설정하기 위해선 먼저 개별식품 및 축산물의 특성을 반영한 객관적인 품질지표를 선정해야 한다. 객관적인 품질지표는 이화학적 실험, 미생물학적 실험 등에서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한다. 이화학적 실험에는 수분 분석, 당도 분석 등의 지표가 사용되며, 미생물학적 실험에는 보존 조건에 따라 일반세균수, 대장균 수 등의 지표가 포함된다. 주관적인 품질지표는 색, 향미 등을 측정하는 관능적 지표가 있다. 정해진 조건을 충족한다면 관능검사의 품질지표도 객관적인 평가 항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드물지만 때에 따라 물리학적 실험이 이용되기도 한다. 물리학적 실험은 특정 식품 및 축산물의 경도, 점도 등이나 포장재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다.

이후 제품의 유통기한에 따라 실측실험법과 가속실험법 중 실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실측실험은 제조사가 의도하는 유통기한의 약 1.3~2배 기간 동안 실제 보관 또는 유통 조건으로 식품을 저장하면서 선정한 품질지표가 품질한계에 이를 때까지 실험을 진행해 얻은 결과로부터 유통기한을 설정하는 방법이다. 실측실험법은 유통기한이 3개월 미만인 식품 및 축산물에 적용된다. 가속 실험은 실제 보관 또는 유통조건보다 가혹한 조건에서 실험해 단기간에 제품의 유통기한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가속 실험은 유통기한이 3개월 이상인 식품 및 축산물에 적용된다. 식품 및 축산물의 유통기한 설정실험은 원칙적으로 실측실험을 먼저 시행해야 하지만, 효율성을 위해 가속실험으로 유통기한을 설정했다면 실측실험을 통해 가속실험으로부터 예측한 결과가 정확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루 지난 우유, 먹어도 되는 건가요?
식품위생법에 정의된 식품 표시 기한으로는 유통기한 외에도 품질유지기한이 있다. 품질유지기한은 2007년 식품 자원 낭비를 예방하고 국제 제도와 국내 제도를 발맞추기 위해 추가됐다. 품질유지기한은 최상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한을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가공식품에 적용되는 유통기한 제도와 달리, 품질유지기한 제도는 김치나 통조림 식품처럼 소비자들이 오래 보관하며 섭취하는 일부 품목에만 적용된다. 유통기한 표시 대상 식품은 반드시 유통기한이 표시돼야 하지만, 품질유지기한 표시 대상 식품은 식품회사가 표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품질유지기한 표시제품은 품질유지기한이 지나도 유통 및 판매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통기한 표시제품과 구별된다.

한편, 현행 기한표시 제도를 두고 식량 자원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한국식량안보재단에서 지난 2011년 발표한 「유통기한 경과로 인한 폐기식품의 발생현황과 감축방안」에 의하면, 식품 폐기에 드는 금액은 2009년 기준 연간 약 5,800억 원에 달했다. 식품폐기물이 발생한 원인으로는 ‘기한 내 판매 부진’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이에 2012년과 2013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함께 적는 시범 사업을 시행한 바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해당 사업을 분석한 바로는, 현행 유통기한 표시제도를 폐지하고, 현행 제조 일자 표시제품 및 유통기한 1개월 미만 제품에는 제조 일자와 소비기한을 함께 적되, 현행 유통기한 1~6개월 제품 및 건강기능식품도 소비기한 표시로 전환하며, 현행 유통기한 6개월 이상 장기보존식품에 대해선 품질유지기한 품목으로 일부 확대하는 방안이 제1순위로 제시됐다.

소비기한 제도의 도입은 현행 유통기한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기존 유통기한 제도와의 법적인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차윤환 숭의여대 식품영양과 교수는 “유통기한은 법적으로 식품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돼 왔다”며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소비기한이 지나지 않은 제품을 식품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때 (법적인) 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식품의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다르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기 쉽다. 편의점에는 도시락이나 김밥처럼 유통기한이 아주 짧은 즉석조리 식품이 판매되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폐기’라고 불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김 학우는 “근무한 편의점에선 즉석조리 식품을 유통기한 30분 전부터 폐기했다”며 “주로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이 폐기로 나오는데 냉장 진열대에 보관하면 유통기한이 하루가 지나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유통기한이 식품이 변질하지 않는 기한의 70%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제조일로부터 10일 뒤에 섭취해도 건강과 안전에 문제가 없는 식품이라면 이 식품의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7일까지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비자가 식품을 정확한 소비기한에 맞춰 음식을 섭취하기란 쉽지 않다. 식품 소비기한은 식품의 보관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편의점 ‘폐기’는 적당한 온도에서 안전한 포장재에 담겨 보관되는 것과 달리, 가정에서 이러한 환경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우유의 예시는 정확한 소비기한 파악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식약처에서 밝힌 우유의 소비기한은 최장 45일, 적정 보관 온도는 0도-10도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의 실험 결과 우유를 25도에서 보관했을 때 유통기한 만료일에 기준치 이상의 일반세균이 검출됐다. 우유는 산소, 온도, 빛, 금속에 의해 변질하기 쉽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보관하는 것을 깜박한 소비자에겐 이상적인 보관 환경에서 측정된 소비기한보단 유통기한이 더욱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냉동식품의 소비기한 역시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박민경(통계 17) 학우는 “유통기한이 2~3일 지난 냉동 포장 닭가슴살을 먹고 탈이 난 적이 있다”며 “평소 장이 약해 조금이라도 변질이 의심되는 식품을 먹으면 속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닭고기는 주로 산소나 온도에 의해 변질하기 쉽다.
 

건강한 식품 산업을 만들어요
악의적으로 유통기한 제도를 어기는 업주도 있지만, 관련 지식이 부족해 법을 어기는 업주도 존재한다. 이에 농식품유통교육원에선 ‘식품유통기한 설정실험’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해당 강의를 진행하는 김용수 그린팜 대표는 “수강생 대부분은 소규모 식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한다”며 “대기업에선 유통기한 설정실험 교육을 자체적으로 진행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유통기한 설정실험 시 흔히 발행하는 실수는 식품의 특성에 적합한 품질지표를 고르는 일이다. 이때 식품의 특성에 부적절한 품질지표를 고르면 실험 결과에 큰 오류가 발생한다. 이에 김 대표는 “관련 교육을 이수하거나 경험을 쌓으면 이러한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며 “이외에도 유통기한 표시 여부를 검사하는 기계를 도입하는 등의 해결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기한 제도의 개선 방법으로 기존 식품 표시 제도를 통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현행법을 기준으로 자연 상태의 농산물은 기한 표시를 하지 않는다. 축산물과 가공식품에는 유통기한이 명시된다. 이외에도 식품의 종류에 따라 제조일과 품질유지기한이 적히는 경우가 있다. 차 교수는 “식품별 표시 제도의 차이는 식품별 관리 기준이 달라서 발생한다”며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에게는 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식품의 관리 기준을 통합해 운영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비슷한 예로 식약처에서 발표하는 유통기한 설정실험 지침 역시 적용 대상을 식품에서 축산물 및 건강기능식품으로 확대한 바 있다. 

식품 유통기한의 적절한 설정 및 표기는 식품 안전뿐만 아니라 제조·유통·판매업계의 상생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차 교수는 “최근 냉장유통의 확대와 포장 기술의 발전으로 유통기한이 과거보다 확대됐다”면서도 “유통기한의 증가가 오히려 관련 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식품 제조업자로선 유통기한을 길게 측정할수록 좋다. 유통기한이 긴 식품을 만든 후 보관해 판매하면 공장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식품 유통업자로선 유통기한이 짧을수록 좋다.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은 보관이 어려워 가게에 자주 공급돼야 하고, 그 결과 안정적으로 일거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조업자, 유통업자, 소비자가 느끼는 최적의 유통기한이 서로 달라서 이를 포괄하는 유통기한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기한표시 제도의 정착을 위해선 국가 기관은 물론 식품 제조·유통·보관·판매업계와 소비자 사이의 꾸준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해당 제도가 마련되기까지 오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일상화된 불편함을 하나둘씩 해결하다 보면 우리 삶은 살기 편한 세상에 점점 닮아가지 않을까.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