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근대적 사고로 들릴 수 있으나,  ‘아버지상’ 이라는 단어가 새삼 그리워진다. 수 십년 전 이미 페미니스트로 자처했고 또 그렇게 교육된 사람이니, 그 언어 자체에 내재된 다원화된 차별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혹은 한 가정에서 표방하는 이상적인 인물상을 통칭하는, 다소 모호하고 감상적인 개념으로 그 단어를 상정해본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아들이 장차 꿈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직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퇴임 후 존경 받으며 활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직업화된 것인데, 듣는 순간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감히, 통칭 ‘지우기 문화’로 칭하고 싶은, 우리가 처한 현시대가 경청해야 할 대목인 것이다. 정쟁이 우선시되며, 정치.사회.문화.시대적 컨텍스트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크고 작은 역사적 인물들이 현재의 잣대에 눌리고 지워지는 작금의 현상이 심히 우려된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도, 아버지라는 상징적 인물을 세우고 그 이미지를 높여왔던, 옛 시대 교육받지 못한 어머니들도 알았던 그 단순 진리가 잊혀진 것 아닌가 우려된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귀하고 절박한 시점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되,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좀더 세련되고 검증된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속도전이라는 어휘는, 선진화된 우리사회가 더 이상 남용할 수 있는 도구이거나 객관화된 명분이 아닌 듯 하다. 이미 ‘양철 냄비’ 문화라는 오명으로 격조가 낮아진 터인데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실과 유리된 ‘상아탑’의 부정적 이미지가 크게 비난되었던 시절도 있다. 그러나 무릇 대학은, 깊은 소용돌이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존재하는 ‘정점’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그 역사적 사명이다. 본관 건축 시, 깊은 바다에 돌을 수장시켜 이끼를 묻혀가며 그 역사성을 확장하려 했다는 예일대학의 상징적 일화나, 아직도 전통적 교수의 이미지와 그 영역이 존중되고 보존 받는 옥스포드 대학 이미지에서, 우리가 배울 바는 없는 것인가? 

익히 알려진 죤 맥스웰의 “다섯 단계 리더쉽” 논리가 새삼 와 닿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이다. 1) 타이틀 2)관계 형성 3)기여도 4) 인재양성을 통해 얻어진 리더쉽 그 다음 단계로, 인물 자체가 표상하는 이념 및 가치를 통해 존경 받는 리더의 존재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길러내는 토양과 그 시스템을 갖춰 가는 것이, 이제 우리 모두의 공동 책무인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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