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범(남·58) 소장은 지난 33년 동안 청소년의 비행(非行)을 예방하고 비행 위기에 처한 청소년(이하 위기 청소년)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앞장서 왔다. 그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서기관’ ‘대전 솔로몬로파크 소장’을 거쳐 현재 ‘안산 청소년꿈키움센터 소장’으로서 청소년 교육 임무를 다하고 있다. ‘소명이라 생각하며 살아갈 뿐인데 인터뷰를 하게 돼 쑥스럽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 본지 기자는 그가 현재 근무하는 안산 청소년꿈키움센터로 향했다.


아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다
윤 소장이 법무부 9급 보도직 공무원으로 소년원에 발령받았을 때 주변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착실했던 애가 왜 하필 소년원에서 일하냐’ ‘검사가 될 줄 알았는데’ 등의 말을 들으면 씁쓸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윤 소장은 학창시절 지켜본 학교폭력 악순환의 고리를 제거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대로 어느새 입사자 중 유일한 서기관이 됐고, 수백 명의 딸과 아들을 마음으로 품었다.

1985년, 윤 소장의 첫 발령지는 비행의 정도가 다소 심각한 청소년이 모이는 ‘충주소년원’이었다. “처음 부임했을 때 아이들의 거짓말에 늘 속아 힘들었죠”라고 입을 뗀 그는 “오죽하면 청소년 교육 정책의 해법은 전국에 있는 위기 청소년을 모아 태평양에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던 윤 소장은 해를 거듭해 그들과 가까워져 보니 비로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아무도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이 집단에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이들을 향한 섣부른 선입견이 오히려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라고 전했다. 그는 위기 청소년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선생님이 마음에 총을 차고 있으면 아이들도 총을 차고, 반대로 무장을 해제하면 마음을 열어요”라고 이들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윤 소장이 근무하는 안산 청소년꿈키움센터는 학교, 검찰, 법원에서 교육 조치를 받은 청소년이 비행을 끊고 안전하게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하는 곳이다. 교육 기획을 총괄하는 그는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윤 소장은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위로하고 절망 대신 희망을 품도록 하며 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늘 고민해요”라고 전했다. 또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해당 청소년의 보호자 혹은 친한 친구를 위한 교육도 함께 진행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함께 해주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윤 소장은 위기 청소년 대부분의 공통점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억울함과 가난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은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나고 싶지 않았고, 부모가 이혼하길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는 ‘사흘 굶어서 담을 넘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속담을 예로 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어른도 범죄를 저지르는데 청소년이 가난이라는 큰 짐을 그대로 져야 함에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어른들의 밥 한 그릇에서 반 그릇만 나눠줘도 이 아이들은 일어설 힘이 생겨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소장은 돈이 없어 방에서 쫓겨나거나 끼니를 거르는 위기 청소년에게 금전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제적인 도움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며 “그저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큰 힘이 돼요”라고 전했다. 윤 소장이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제 얘기를 들어줘서 감사해요’다. 그는 ‘괜찮아, 할 수 있어, 해보자’ ‘나는 너를 믿는다’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해’와 같은 따뜻한 말들로 답해 청소년들에게 힘이 돼준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함께 했던 청소년들과 지속해서 소통하기 위해 그들이 퇴소한 후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살핀다. 실제 그의 SNS 친구 중 상당수는 소년원 출원생이다. SNS를 통해 위기 청소년의 성공적인 사회정착을 응원하는 과정도 윤 소장의 교육 과정 일부다. 이에 그는 “댓글을 통해 꾸준히 안부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이 비속어를 사용하는 글을 줄이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라고 했다.


“살아줘서 고맙고, 버텨줘서 고맙다”
윤 소장은 현대사회를 ‘3포 시대’ ‘5포 시대’도 아닌 ‘무한포 시대’라고 칭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보통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이 버팀목이 되니 쉽게 포기하지 못하죠”라며 “반면 위기 청소년들은 곁에서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청소년 인구가 급감하는 요즘, 위기 청소년의 수 자체는 줄고 있지만 청소년 범죄는 증가하는 추세다. 청소년 자살률 또한 마찬가지다. 이에 윤 소장은 “가해자 중심의 처벌만을 강조하는 ‘응보주의 방식’에서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를 모두 고려하는 ‘회복적 돌봄’ 방식으로 나아가야 악순환의 구조를 끊을 수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가해자 낙인효과에 의해 잔혹한 재범이 늘어나요”라며 “곁에서 희망을 주는 사람이 없는 이들은 쉽게 사람을 폭행하고 쉽게 자살해버리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한 위기 청소년 A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날 윤 소장에게 ‘소년원에서 퇴소한 A가 자살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A는 불과 몇 달 전 소년 장학지원기업에서 대학 입학금을 후원받은 아이였기에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다. A가 살던 집에 찾아가 보니 A의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채로 누워있었고 다른 가족은 없었다. A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이성 친구는 A의 힘든 상황에 지쳐 떠났다. 윤 소장은 “대학을 가기가 힘든 상황이었을 A를 조금 더 일찍 찾아가 봤더라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후회됐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는 경제적 후원에만 그치지 않고 무의탁 아이들을 찾아가 돌보는 ‘희망 도우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는 위기 청소년의 집에 담임교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취업과 학습을 도와주는 프로젝트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2016년부터 희망 도우미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던 위기 청소년 B가 올해 고등학교 특별전형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담임교사와 선생님들이 성심성의껏 지도한 결과 현재 정식 공무원 교육을 받는 B의 희망부서는 ‘법무부’다. 본인이 지금껏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에서다. 이에 윤 소장은 “B의 사례로 볼 수 있듯이 아이들은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줘도 살아나요”라고 말했다.


홀로 핀 딸들에게 용기를 선물하다
윤 소장이 마음으로 품은 딸 중에는 미혼모도 있다. 이에 윤 소장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정에 굶주려 있는 아이들은 충동적으로 이성 친구를 만나요”라며 “문제는 아이가 생기면 대부분의 남성이 책임지지 않고 떠난다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혼모가 된 소년원 출원생 C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달 전 C가 홀로 아이를 낳은 그 날 C는 며칠을 고민하다 윤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C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윤 소장은 “얼마나 고생했니, 어떻게 혼자 낳았니, 지금 어디니?”라며 C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이에 C는 “저를 혼내실 줄 알았는데 아빠(윤 소장)에게 정말 감사해요”라며 펑펑 울었다. C는 현재 아이를 키우면서 보호직 선생님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으며 윤 소장은 C가 주거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받을 수 있게 도움을 줬다.

미혼모 청소년이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주거, 분유, 기저귀에 대한 금전적 문제다. 이에 윤 소장은 이들을 돕기 위한 ‘스토리펀딩(Story-funding)’을 진행했다. 그는 “미혼모들은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힘드니까 모든 게 막막하죠”라며 “그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라고 계기를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된 스토리펀딩은 지난 2015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스토리펀딩을 시작으로 윤 소장은 매일분유, 정식품, 유한킴벌리(Yuhan-kimberly)에 찾아가 이들의 상황을 알리고 매월 60인분의 분유, 이유식, 기저귀 후원 협약을 체결했다. 그는 “오히려 지금은 후원사 측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전해와요”라며 뿌듯함을 전했다.


평생 그들의 아버지로 동행하는 삶
윤 소장은 ‘2016년 제2회 대한민국공무원상 근정포장’을 수상한 바 있다. 이에 그는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큰 상을 받았어요”라며 “현대사회는 당연한 행동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인 거죠”라고 했다. 그는 “구조적 핵가족화와 가정의 이혼 등 여러 사회적 문제가 심화해 아이들이 위기 청소년이 돼 사회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어요”라며 “위기 청소년들이 한 명이라도 사회로 정착하게 도와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며 청소년 행복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그의 목표는 105세까지 사는 것이다. 그는 105세 잔치에 700명의 아이를 초청해서 감자탕을 사주는 것이 꿈이다. 이를 들은 이정열 남다른 감자탕 대표는 감자탕 1,000그릇을 후원하기로 했다. 이런 그의 좌우명은 ‘믿기만 하자’다. 그는 “쓸모없다고 버려진 아이도 관심을 주면 일어설 힘이 생겨요”라며 “좌우명의 의미는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만나주면 하루하루 자란다’는 말의 줄임말이에요”라고 했다. 아이들을 믿고 기회를 주면 반드시 살아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어린 시절 방황을 겪고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 있는 인물은 많다. 김인배 삼척시장 전 후보, 국원서 노무사, 구건호 동대문 떡볶이 대표, 금융 범죄 예방연구소 이기동 소장 등은 청소년기에 방황을 겪고도 극복해 위기 청소년의 희망이 됐다. 윤 소장은 “성공 인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사는 것 자체가 충분한 성공이다”고 전하며 대한민국 위기 청소년들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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