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어야 하겠습니다.” 올해 5월로 활동이 마무리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법률 자문으로 참여한 법학자 한 분이 하신 말씀이다. 사람은 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행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라는 의미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정권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들을 사찰, 감시, 검열, 배제, 통제, 차별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위헌적이고 불법부당한 국가범죄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오랜 시간 쌓여온 예술계 내부의 여러 문제들과 적폐가 뒤엉켜 스스로 제 모순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계 국공립기관의 사업에는 예술계의 전문가들이 예술단체장, 예술감독, 자문위원, 심의위원 등의 직을 맡아 참여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우리가 평소에 존경했던 작가, 비평가, 대학교수였다. 블랙리스트가 실행되었던 기간 동안 이러한 직을 맡았던 전문가들은 음으로 양으로 블랙리스트 실행을 방조하거나 협조하였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청와대, 국정원, 문체부 간의 긴밀한 협조 체계를 바탕으로 한 조직적인 범죄행위였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당시 이러한 직을 맡아 블랙리스트 실행에 연루되었던 이들 중 현재까지 자신이 행한 일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이를 반성하거나 사과한 민간 전문가는 거의 없다.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하거나, 자신은 전적으로 ‘미학적 판단’이나 제시된 ‘객관적 근거’에 기초하여 일을 했을 뿐 ‘배제와 검열 작동의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소위 ‘전문가로서의 미학적 판단’이 실제로는 얼마나 나약했으며 바로 그 이유로 얼마나 쉽게 조직적이었던 국가 범죄에 이용되었는가에 대하여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책임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하다. 그런데 법적 조치만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을까. 십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블랙리스트와 같은 저열한 범죄가 다시, 그리도 간단히 가능할 수 있었던 우리 사회의 토양은 무엇이었을까.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바로 이 문제를, 즉 우리 안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리하여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존재다. 오이피푸스는 그것을 알고자 했다. 설사 그 끝에 파국이 기다린다고 해도. 과연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제대로 읽어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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