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근 2016년에 출간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다시 화두에 올랐다. 배우 정유미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 캐스팅된 후 SNS에서 반 페미니스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 배우의 SNS 계정에는 하루 새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면서 누리꾼들은 배우의 출연 결정을 비난하거나 옹호했고, 영화가 제작되지도 않았는데 네이버의 누리꾼 평점은 14일 저녁 10시 기준 10점 만점에 4.66점으로 평가됐다. 이 소설을 언급한 연예인의 수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아이돌 그룹의 한 구성원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일부 누리꾼들에 의해 자신의 사진이 찢기거나 불태워지고, 악의적인 댓글 테러를 당했다. 또한 지난 6월에는 한 남자 고등학교 교사가 이 소설을 수업 교재로 쓰겠다고 SNS에 밝혔다가 혐오가 가득한 비난의 댓글에 시달려야만 했다.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한 한국 여성이 태어나서 30대 중반의 주부가 되기까지 겪을 수 있는 성차별적 경험이 집약된 기록문학에 가까운 소설이다. 할머니의 남아 선호 사상부터 학교에서의 성별에 따른 규정·규제의 차별, 노출증 환자를 포함하여 학교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취업 시 받는 불이익, 결혼과 육아에 의한 경력 단절, 딸에서 엄마, 며느리가 된 김지영에게 주어진 불평등한 성 역할에 이르기까지, 한국 여성들에게는 매우 익숙하고 일상적인 경험이기에 다소 밋밋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불러오는 온라인 상의 여성 혐오적 비난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는 성차별적 구조에서 사는 수많은 김지영들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부족해 보인다. 지난 1월에 촉발된 미투 운동이 거세질수록 여성 혐오의 강도도 비례하여, 오히려 페미니스트를 사회적 낙인으로 치부하는 형국이다.

성 대립으로 치닫는 현재 상황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상대방의 성에 대해 이해하고 문제를 공감할 수 있는 젠더 감수성이다. 젠더 감수성이 형성돼야 김지영의 삶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고, 아버지의 삶에 드리운 성 역할의 부담과 고통을 읽을 수 있다. 그래야만 성 불평등에 대해 성숙하고 효과적인 논의가 가능해지고 성 평등의 단계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이는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과도 직결되며, 일찍이 초·중·고교의 교육현장에서부터 인권교육의 측면에서 성 평등 교육이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