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 입학 전,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다녔다. 남학생들이 장난삼아 외치던 비속어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가 들어있었고, 그 의미를 알건 모르건 수많은 학생은 별다른 거리낌 없이 그러한 문화에 녹아들었다. 적어도 필자가 교복을 입던 당시는 별다른 불평의 목소리가 없었고, 여성 혐오적 태도와 비속어는 그저 사춘기 학생들의 짓궂은 장난 정도로 여겨졌다.

이처럼 사회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에까지 만연한 여성 혐오와 성차별적인 태도는 그저 일상에 불과했고, 비뚤어진 사회가 멀쩡한 줄 알고 살았던 필자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대다수 학생이 무지했던 결과다.

지난 10일(월) 발간된 숙대신보 제1352호의 ‘성차별 없는 학교를 꿈꾸다’는 필자가 청소년들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기사였다. ‘청소년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해당 기사는 서울특별시 내의 남녀공학 고등학교, 여자 고등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기자들이 직접 방문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후 작성한 설문기사다. 페미니즘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학생들의 답은 가지각색이었다. 페미니즘 덕분에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던 답변,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상이라 지지하지 않는다던 답변 등의 다양한 답변이 설문지를 가득 채웠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의 답변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한 말버릇부터 고칠 수 있는 성평등 교육을 원한다’는 답변이었다. 이 외에도 잘못된 학내 분위기를 지적하고, 페미니즘 교육을 원한다는 식의 답변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보이루’를 비판했더니 발차기가 날아오더라” 교내에서 여성 혐오적 문구를 비판한 한 여학생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에 남긴 글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깨닫기까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기까지 많은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울어진 사회에서 올바른 사람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엇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면 본인이 기울어진 시각으로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 질문해보길 바란다.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해 타인의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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