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심대로 동물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 중 동물의 희생이 따르지 않은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먹을 것부터 시작해 몸에 바르는 화장품까지, 성분 표에 동물성 재료가 기재되지 않은 제품이 드물 정도다. 이런 현상에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먹고, 입고, 바르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식탁에서 사라진 동물
  동물의 희생을 피하려는 여러 시도가 ‘비건(Vegan)문화’를 만들었다. 원래 비건은 철저하게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이르는 말이다.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으로 안주하지 않고 동물 보호 및 환경 보호 신념의 분야를 넓혔다. 이런 움직임에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갖던 비채식주의자들도 뜻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동물의 희생이 따른 것을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입지도, 쓰지도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소수의 특별사례가 아닌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비건문화를 얘기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것이 채식주의다.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뿐 아니라 달걀 및 우유 등 동물에게서 나오는 생산물의 사용을 지양하고, 식물성 재료가 주가 되도록 식단을 꾸린다. 모든 채식주의자는 채식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그 정도에 따라 여러 부류로 나뉜다. 우선 크게 ‘베지테리언(Vegeterian)’과 ‘세미베지테리언(Semi-Vegeterian)’으로 나뉜다. 달걀과 유제품은 섭취하지만 육류는 섭취하지 않는 베지테리언과 달걀과 유제품 뿐 아니라 조류, 어류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고기만을 섭취하는 세미 베지테리언으로 나뉜다.
  한편 아직 국내엔 채식 식단이 다양하지 않아, 채식주의자가 편하게 채식을 즐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 대표는 “국내 채소는 품종이 다양하지 않다”며 “요리를 하며 맛의 다양성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채식식단의 재료가 다양하지 않아 채식주의자들이 다채로운 식단을 즐길 수 없는 것이다.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신주경(영어영문 15) 학우는 “비건 채식주의자는 계란, 우유 등의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식품을 먹지 않기 때문에 접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원하는 채식주의자를 위해 기존의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식품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본지 기자는 비건 대체 제품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지난 8월 16일(목)에 개최된 한국유기농업협회가 주최한 비건 특별관 박람회를 방문했다. 
  비건특별관 박람회에서 콩고기를 선보인 김창진 ‘글루텐프리(Gluten-Free)’ 채식 전문기업의 부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콩가스, 콩햄 등 콩고기를 만들었다. 김 부장은“콩고기를 만드는 데 콩류를 가공한 원료와 옥수수전분을 이용했다”며 “당사의 기술력으로 고기 식감과 동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콩햄을 구매한 오정인(여·47) 씨는 아토피를 앓는 자녀 덕분에 비건 식품에 관심을 갖고 박람회를 방문했다고 했다. 오 씨는“건강상의 이유로 평소 식품을 접하지 못한 딸을 위해 콩햄을 구매하게 되었다”며“콩으로 만든 햄이지만 식감이나 맛이 기존 햄 제품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짜보다 값진 가짜 
  이런 동물보호는 음식에서만 행해지진 않는다. 패션계에서도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외투 속을 채운 오리털부터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단추에 쓰인 코끼리 상아까지 기존의 패션업계는 동물을 남용해 왔다. 동물의 권리를 중시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패션제품의 제작과정에 동물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본지는 숙명인들이 비건문화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일(화)과 5일(수) 이틀간 숙명인 5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신뢰도 95.0%, 오차범위 ±1.8%p) 응답자 299명 중 73.9%(221명)이 동물성 원료로 만든 의류 제품을 구매하며 죄책감을 느꼈다고 응했다. 표지은(역사문화 15) 학우는 “동물을 희생해 만든 제품을 보면 인간의 욕심을 위해 비윤리적인 살생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제품을 구매할 때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국내 의류 업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조과정에서 동물성 재료를 배제할 뿐 아니라 제작에 있어 동물학대 과정이 없는 의류 제품들을 ‘비건패션(Vegan Fashion)’이라고 한다.
  비건패션제품들은 대체 원료를 이용해 의류 제품으로 제조된다. 대표적으로 동물의 털 대신 ‘페이크 퍼(Fake Fur)’라고 불리는 인조 털을 사용하고‘페이크 레더(Fake Leather)’라고 불리는 인조 가죽으로 동물의 천연 가죽을 대체한다. 인조 털은 대개 아크릴폴리에스터(Acrylicpolyester)로 이뤄지고, 인조가죽는 폴리우레탄(Polyurethane)으로 만든다. 이들은 인조 털과 인조 가죽으로 동물의 털과 가죽을 대신한다. 
  흔히 알려진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인조 가죽 외에도 새로운 소재로 만들어진 인조 가죽이 있다. 파인애플 껍질 및 줄기 등의 부산물로 가죽을 만들어 가방을 만드는 비건패션 기업‘마리스 파인애플(Mary's Pineapple)’의 제품이 그 예다.  고귀현 마리스 파인애플 대표는 “비건패션에서 새로운 소재를 다뤄보고 싶었다”며 “가죽의 합리적인 대체재들이 개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동물의 가죽과 털의 대체재인 인조 털 및 인조 가죽에 대한 인식이 숙명인 사이에선 좋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재로 만든 제품에 대한 질문에 430명 중 32.3%(139명)가 진짜 천연 가죽 및 동물의 털보다 내구성이 떨어질 것 같다고 답했고, 27.9%(120명)가 가짜라는 티가 많이 날 것 같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이 인조 원단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인조 원단이 갖는 장점들도 많다. 인조 털의 소재인 아크릴폴리에스터는 실제 동물의 모피보다 염색이 잘 되고 제작할 때의 제약이 훨씬 적다. 또한 인조 가죽의 소재인 폴리우레탄은 천연가죽과 달리 소재 늘어짐이 없고 가볍고 튼튼하며 물이 닿아도 얼룩지지 않는다. 박 대표는 “아직까지 사회에 인조 털 및 인조 가죽은 그저 ‘가짜’라는 인식이 만연하다”며 “가짜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소재의 장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기업 홍보의 힘든 점을 얘기했다. 이어 박 대표는 “실제로 대체재들의 장점이 천연 동물성 원단의 단점을 능가한다”며 “내구성 및 디자인에 있어 소재상 뒤쳐짐이 없도록 가공과정에서 더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패션 사업자들은 아직까지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한 비건패션의 입지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패션 제품을 소비할 때 제품에 동물성 재료가 쓰였는지 확인하는 학우는 487명 중 35.3%(172명)에 불과했다. 동물을 사용해 의류를 제작하는 것이 아직까지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신 대표는 “비건패션이라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며 “동물성 재료만 쓰지 않았다면 모두 비건패션이라 할 수 있는데 소비자들은 낯선 단어에 바로 어려움을 느끼고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조 가죽뿐 아니라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면으로 만든 제품도 비건 패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동물성 원료의 대체재를 사려고 마음먹기보다 동물성 재료가 쓰인 옷의 문제를 인식하는 게 더 우선이다”며 “비건패션이 낯설지 않은 주류문화로 자리 잡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장품 성분표 속 없어진 동물들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제품이라 광고하는 화장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습진제거에 효과적이라는 마유크림, 건조한 입술에 바르는 꿀로 만든 립밤(Lip-balm) 등 피부미용에 좋다고 광고하며 천연화장품임을 강조한다. 한편 이러한 미용제품에는 흔히 우유, 꿀과 같은 동물성 원료들이 사용되며 이를 생산하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학대를 당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런 제품에 반하는 비건뷰티(Vegan Beuty)는 식물성 원료만을 배합해 만들어진 화장품을 사용하는 문화를 뜻한다. 이는 동물실험에 반대하고 친환경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 또한 포함한다. 비건 비누 기업 ‘트망트망’의 최진 대표는 식물성 오일이 주 성분인 비건 비누를 출시했다. 최 대표는 “비건 비누는 꿀 및 우유 등 피부 보습에 좋은 동물성 원료 대신 식물성 오일을 이용했다”며 “경화제 등의 화학약품 없이 만들어져 환경오염의 위험도 없다”고 말했다. 비건 박람회의 방문객 오 씨는 자녀의 아토피에 도움이 되고자 비누 구매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 씨는 “요즘 비건 제품들은 사용해보면 인체와 환경 모두에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도 기능면에서 일반 동물성 제품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비건 제품이 기능적인 면에서 일반 제품들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건 제품의 인식은 좋지 않다. 숙명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제작과정에 있어 동물학대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구매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한 459명 중 과반수인 71.5%(328명)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더불어 ‘화장품을 소비할 때 해당 제품의 윤리성 및 동물성 원료 사용 여부를 고려한 적 있냐’는 질문에 응답한 251명 중 44.6%(112명)이 ‘고려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식물성재료만을 사용한 화장품은 일반 화장품에 비해 효능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익명의 한 학우는 “식물성 원료만으로 만든 화장품은 일반 화장품에 비해 미백, 주름개선 등의 기능이 약할 것이라 생각된다”며 “동물권을 고려하는 윤리적 소비도 필요하지만 화장품의 기능을 보고 구매결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식물성원료만을 사용한 화장품이라 할지라도 기능은 떨어지지 않는다. ‘해피비건(HappyVegan)' 이희영 대표는 “동물성 원료와 화학성분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기능적인 차이점은 없으며 알레르기 유발의 가능성도 일반 제품보다 적다”며 “동물성 원료나 자극적인 성분을 넣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일반 화장품에서 기대하는 미용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어떻게 동물의 희생이 따르는 것을 사용하지 않을까?’‘본래 우리가 누리던 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동물이 행복할 수 있는 선에서 우리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외친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이젠 결코 작지 않은 ‘문화’를 만들었다. 이미 익숙해진 환경에 눈 감고 있기보단 이젠 우리도 그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 ▲ 비건 비누 기업 '트망트망'이 제작한 천연비누다. 식물성 원료들만 이용해 만들어진 비누가 판매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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