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인과 소설가의 입을 통해서, 또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수많은 사랑이야기를 접하며 살아간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단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타인의 사랑이야기에도 감정을 이입하며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인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사랑이야기에 지나간 사랑을 떠올려 보고, 새로운 사랑에 대해 꿈을 꾸기도 한다. 그리고 직ㆍ간접적으로 얻어진 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의 정의에 대한 물음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러나 그것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사랑을 인지하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마다 이해하는 사랑의 개념은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측정하거나 검증할 수 없는 인간 개개인의 심오한 정서에 해당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단지 개인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현상과 아주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개념이다. 인류가 걸어온 길을 되밟으며 세계 역사의 주요 고개마다 나타난 사랑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랑은 각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돼왔다. 문명 이전 시기의 사랑은 종족번식을 위한 행위를 돕는 정서적 적응 과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명사회로 접어들며 사랑은 점차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시대에는 사랑을 성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믿었고, 또 어떤 시대에는 사랑을 성이 아닌 고상한 것, 신에게로 이르는 초월적인 것으로 믿었다. 18세기 이후에는 사랑과 결혼을 함께 묶어 생각하게 돼 한 사람과 일생을 함께하는 행복을 약속받는 것으로 여겼다.


고대 문명사회 사람들은 사랑의 정열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정열적인 사랑은 상대와 하나가 되려는 강하고 성적인 욕망으로서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열렬해 지나칠 정도의 황홀감을 수반해 일종의 병적 증세로 치부되기도 했다. 특히 종교와 철학은 정열적 사랑의 세속적인 측면을 부정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사랑을 할 때 단지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서 벗어나 절제할 것을 강조했다. 연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지혜나 그 밖의 다른 덕을 증진시켜 줄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지혜를 위해 사랑을 얻고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세 시기의 신 중심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사랑 역시 종교적인 색채를 띠었다. 초월적 존재인 신과 합치하고자 하는 ‘아가페(Agape)’는 그 당시 가장 가치 있는 사랑의 형태로 인정받았다. 반면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구인 ‘에로스(Eros)’와 관련된 정열적 사랑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중세 말 르네상스 시기에는 고대 부흥운동에 힘입어 종교적 가르침에 의해 억제됐던 열정적 사랑이 다시 부활했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사랑이란 지옥을 벗어나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가 열리면서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사랑은 과시용, 장식용으로 변모했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결혼은 감정의 이끌림보다는 계약적 의미가 강했다. 신분의 유지 혹은 상승은 이 시대 사람들의 최고 목표였고, 열정적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사랑이야기에는 정열적 사랑을 공유하려던 사람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를 암시하는 비극적인 내용이 많았다. 비극적 사랑이야기의 대표격인 ‘로미오와 줄리엣’도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자 바로크 시기에 성행했던 정략적 사랑의 행태는 시민계급의 공격을 받았다. 근대적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내세운 시민계급은 개인 사생활에 정열적 사랑을 반영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소위 ‘낭만’의 개념이 부각됐고, 연애결혼을 사랑의 이상으로 여기게 됐다.


현대에는 사랑에 대해 현실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서면서 사랑은 친밀한 사적 관계의 속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 극적인 사랑, 초월자를 향한 믿음과 같은 사랑보다는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행동의 특성을 포괄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랑에 대한 견해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의 차이일 뿐, 사랑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며 사랑은 인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학교 교양과목인 ‘문학과 사랑의 테마’ 강의를 맡고 있는 문시연(불어불문 전공) 교수는 “삶의 패러다임이 가속화되면서 사랑의 모습 또한 변질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변화할 수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은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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