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은 왜 일하지 않고 구걸을 할까’ 서울역에서 천 원 한 장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만한 생각일 것이다. 몸이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 수 있다. 이러한 시선에 최준영(남·53) 작가는 “노숙인들은 단순히 돈이나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던진다. ‘거리의 인문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 작가는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게 강의를 통해 인문학을 전파하고 있다.

노숙인 인문학의 시작,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최 작가는 2005년 9월부터 4년 동안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쳤다. 노숙인 인문학이란 *클레멘트 코스를 기반으로 1년 동안 15강에 걸쳐 철학, 글쓰기, 문학, 역사, 예술사를 인문학 공부를 희망하는 노숙인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최 작가는 성프란시스대학을 통해 노숙인 인문학을 처음으로 접했다. 최 작가는 대학의 설립자인 임영인 신부로부터 대학에서 인문학 강의를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아 노숙인 인문학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학위가 없어 많이 망설였어요”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노숙인 인문학을 시작한 것이 삶의 전환이 됐죠”라고 말했다.

그해 9월 성프란시스대학의 첫 번째 수업은 최 작가에게 ‘역사적인 첫 강의’로 남았다. 그는 “처음 노숙인 인문학을 시작했을 때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어요”라며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라는 게 국내에서는 처음 이뤄졌기 때문이죠” 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최 작가는 대학에서 노숙인 학생들과 접촉이 가장 많았던 교수였다. 오후 7시부터 강의를 했다던 최 작가는 그보다 여섯 시간 일찍 와서 강의 준비를 했다. 그는 “강의에 안 올 것 같으면 찾아서 가는 거죠” 라며 일찍 준비를 한 이유를 설명했다. 노숙인들은 주소도 연락처도 없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강의에 불참하는 노숙인 학생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는 “노숙인들의 동선을 파악해서 찾아갔죠”라고 말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그는 노숙인들과 함께 했다. 그는 “때때로 밥을 사기도 하며 같이 지내면 오후 11시예요”라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문득 ‘나는 집이 있지만 나랑 같이 수업을 하는 사람은 집이 없다’는 생각에 함께 밤을 새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그는 인문학 강의뿐 아니라 노숙인의 생활 자체를 바꾸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노숙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최 작가로 하여금 노숙인들의 생활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이다.

편견 아닌 인문학으로 마주한 노숙인
최 작가가 노숙인의 생활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중 가장 큰 장애물은 노숙인을 행한 사회적 편견이었다. 최 교수는 당시 지인에게 특강을 부탁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크게 실망했다. 최 작가는 “지인은 노숙인들이 인문학을 배우러 올 것이 아닌 식사를 하러 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노숙인이 그랬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 작가는 인문학 강의를 시작하고 노숙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숙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갖게 됐다. 그는 “수업을 듣는 노숙인 학생 중 한 분이 노숙자에 대한 편견에 반박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죠”라며 “멀쩡해 보이는 노숙인의 대부분이 일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우리 사회가 가난을 대하는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정부가 노숙인들을 지원해서 제과제빵이나 용접기술 같은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그들의 생활이 실제로 개선되기는 어려워요”라며 노숙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최 작가가 만난 노숙인들은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주민등록말소 상태이며, 자활 신청을 해도 각종 세금고지서와 빛 독촉에 이를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최 작가는 “노숙인들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에요”라며 “노숙인들이 잃어버린 게 재산과 직업뿐만이 아니라 그는 인문학을 통해 노숙인에게 살아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다.

노숙인들의 생활 문제 해결을 위해 최 작가는 노숙인 자활을 돕는 대중문화 잡지인 ‘빅이슈 코리아(The Big Issue Korea)’의 창간 준비를 도왔다. 빅이슈는 영국 런던에서 1991년 시작해 노숙인들을 잡지판매원으로 고용해 합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빅이슈 코리아는 2010년 7월 5일에 창간됐는데, 최 작가가 영국의 본사에 가서 빅이슈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계획을 세웠다. 최 작가는 3년 동안 창간 준비를 했지만 창간 주최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2008년에 빅이슈 한국판 창간준비모임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를 개설하면서 시작했어요”라며 창간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한국사회에 빅이슈가 창간되기를 꿈꾼 거지, 자신이 꼭 빅이슈를 창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최 작가는 전국을 돌아다니는 대중강연을 시작했다. 주로 도서관에서의 강연이었다. 그는 “제가 거리의 인문학자로서 겪은 독특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을 요청했어요”라며 말을 꺼냈다. 처음에 최 작가는 노숙인, 미혼모와 교도소의 수형인들을 위해 인문학 강의를 했던 경험을 살려 대중강연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그 경험을 자꾸 이야기 하는 건 그들을 대상화시키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최 작가는 이런 생각이 든 후 강의내용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제가 집필한 책에 있는 것들을 모아서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내용으로 강의 내용을 바꿨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런 책들은 사실 최 작가의 일상 이야기를 모두 묶은 것이었다. 최 작가의 「420자의 인문학」 「결핍을 즐겨라」 「동사의 삶」등의 저서는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편집해 나온 책들이다. 특히 「동사의 삶」이라는 책의 제목은 최 작가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담았다. 그는 “저는 제가 이름난 ‘명사’가 아니라 떠돌아다니는 ‘동사’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노숙인 인문학, 흑백 삶에 색을 입히다
노숙인 인문학이 국내에서 자리 잡게 된 건 1기 수료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였다. 2005년 10월 22명이 입학해 그 중 13명이 과정을 수료했다. 수료생 13명 중에서 11명은 취업까지 성공했다. 이는 노숙인 대상 사업 중 최고의 성과였다. 최 작가는 “성프란시스대학 이전에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중 10%이상 성과를 낸 프로그램은 없어요.”라면서도 “성 프란시스 대학은 학생의 60%가 프로그램을 수료하는 성과를 낸 것이죠.”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소식에 당시 언론에서 최 작가에 대한 인터뷰가 쇄도했다. 최 작가는 “수업을 드는 노숙인이 끝까지 수업을 마칠 수 있도록 자극했어요” 라며 “사회의 시선을 깨자는 저의 말을 이룬 셈이죠”라고 높은 성과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최 작가는 노숙인 학생들의 눈물로 찬 졸업식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는 “끝까지 뭔가를 마쳐본 게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말이 와닿았죠”라며 당시 졸업식을 회상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 다음해부터 각종 지역 자활센터와 종교계 사회복지센터에서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이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노숙인을 가르쳤던 그는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수강을 했던 1기 수료생 ‘이 씨’를 잊지 못한다. 어느 날 최 작가는 이 씨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 씨의 갑작스러운 말에도 최 작가는 이유를 묻지 않고 흔쾌히 돈을 빌려줬다. 그는 “새벽에 노숙인 학생들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는 다반사였거든요”라며 그 이유를 말했다.

어느 날 이 씨와 함께 만나게 된 최 작가는 이 씨가 돈을 빌리게 된 사연을 들었다. 이 씨는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한 돈을 최 작가에게 빌렸던 것이다. 그는 “운전기사로 일하려고 했는데 운전면허가 없었어요.”라며 “이 씨는 노숙 생활을 하는 동안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상태였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최 작가의 도움으로 운전면허를 따게 된 이 씨는 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 씨의 자활은 최 작가의 수업시간을 통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시작됐다. 그 수업 이후로 이 씨는 빅터 프랭클의 저작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첫 장에 나오는 ‘삶의 의미를 아는 자는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씨는 최 작가의 수업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목표가 생긴 것이었다.


최 작가는 앞으로의 목표는 노숙인 인문학을 구조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특정 자활 기관에서 뿐만 아니라 노숙인 인문학 과정이 구조적으로 다양하게 확대되었으면 해요”라며 “이를 위해 관악구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최 작가는 인문학으로 삶의 목표를 찾는 노숙인을 봐왔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도 인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인문학 교육이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앞으로 최 작가의 인문학 강의를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삶의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

 

* 클레멘트 코스: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였던 얼 쇼리스가 1995년부터 노숙인, 죄수 등의 빈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친 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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