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늘 과거를 동경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순간을 후회했고, 최선을 다할 수 있던 순간이 그리웠다. ‘결국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 선뜻 스스로를 불태우지 못했다. 사사로운 모든 일에 미련이 남았다. 

우여곡절 끝에 숙명인이 된 스무 살, 미련을 딛고 일어서고 싶었다. 그러나 발 밑의 미련은 필자를 괴롭혔다. 후회는 날아오르려 발버둥치는 필자의 손을 놔주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스물 한 살, 더 이상 제자리걸음하고 싶지 않아 글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숙대신보에 입사했다. 다시 스스로를 마주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시작은 어려웠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상황이 종종 벌어졌고, 스스로가 없어도 그만인 신보사의 부속품 같은 존재인 것만 같았다. 필자는 또다시 선택을 후회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개인 사정으로 그만둔 동기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은 필자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끝없는 우울의 늪에서 필자를 일으킨 것 또한 숙대신보였다. 바쁘게 취재를 하고, 밤을 새워 기사를 작성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던 우울의 심연도, 미련도, 후회도 잊을 수 있었다. 필자의 바이라인(By-line)이 들어가는 기사를 작성하며 오래전 잃었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기자증을 받았을 땐 무거운 책임을 느꼈고, 학내보도 기사를 작성할 땐 정론직필에 대한 사명감이 들었다.

여전히 필자는 과거가 그립다. 뭐든 꿈꿀 수 있던 열다섯의 필자가 그립고, 11월이면 모의고사를 치를 열일곱의 필자가 부럽다. 그러나 지금의 필자가 예전처럼 한심하지는 않다. 결국 필자도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쳐 완성되는 한 편의 기사일 뿐이다. 우울과 미련, 그리고 후회는 퇴고 과정에서 생기는 빨간 피드백일 뿐이다. 

숙대신보는 2015년에 갇혀 살던 필자를 깨워줬다. 앞으로 필자가 작성할 기사엔 숙대신보에 대한 고마움이 담길 것 같다. 남은 2년간의 기자생활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넘어진 필자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 숙대신보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겨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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