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태풍 노루가 다행히 한반도를 비켜 지나가면서 걱정을 한숨 덜었는데요” 지난해 한 뉴스매체에서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 일본 열도로 옮겨간다는 말에 이어 앵커가 전한 말이었다.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은 물론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태풍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 일본 열도를 통과하면서 2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언론 보도에서 비슷한 경우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5월 미국 하와이에서 모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았던 화산분출을 다룬 뉴스와 기사들도 우리 교민의 피해에 대해 제일 먼저 보도를 하고 교민의 피해가 없을 경우 ‘다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주민 1,700여명이 대피하고 주택과 건물 30채가 용암에 삼켜졌던 일에도 한 매체에서는 “‘다행히’ 지금까지 우리 교민을 포함한 인명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뉴스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중심의 보도를 접할 수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고 해서 공식적인 뉴스에서 ‘다행’이라는 표현은 쓰는 것은 옳은 일일까?  

‘다행’의 사전적인 의미는 ‘예상 외로 일이 잘 풀려 운이 좋음’이다. 다른 나라 혹은 외국인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 한반도 혹은 국민에게 피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일이 잘 풀려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모든 나라에서든지 볼 수 있는 언론 매체에서 앵커가 ‘다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 및 나라에게 또 다른 재해를 주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또 이런 가치관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보인다면 예능에서 잠깐의 웃음거리로 나오는 “나만 아니면 돼”가 무의식적으로 삶에 스며들진 않을까 두렵다.

물론 우리나라 혹은 우리 교민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없는 것은 안도할 일이다. 우리나라의 언론이기에 국민의 피해상황을 우선적으로 전달하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외국에서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의 레파토리처럼 들을 수 있는 이 질문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다. 이기적인 표현이 만연하게 쓰인다는 것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느끼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관행이다. 

“우리 교민의 피해는 없었나요?” 형식적인 질문이라지만 심각한 재난 혹은 테러가 일어난 것임에도 이런 질문과 답이 오고 가는 것을 들으면 요즘 표현으로 ‘인류애가 상실되는 기분’이다. 물론 그 질문과 답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진다. 이후에는 구체적인 상황과 어떤 피해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전하는 위로로 이어진다. 그들을 위한 진정한 위로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피해가 없음을 다행히 여기는 태도를 배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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