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불편해...?’ 아니다. 너도 나도 다 불편하다. 개그랍시고 온갖 비하 발언이 쏟아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괜히 찝찝함만 느낀 채 전원을 끄게 된다. 이렇듯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종종 일어나는 개그계에 풍운아가 나타났다.
13년차 개그맨, 1년차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9개월차 기자인 황영진(남·40) 씨는 “저도 완벽하지 않아요”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본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지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만났다.
 

직접 당한 성희롱, 성찰의 기회가 되다

2003년부터 개그맨 활동을 시작한 황 씨는 다른 개그맨들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황 씨지만 과거엔 그의 개그에도 동료들의 개그처럼 외모 비하, 성차별적 요소가 포함돼 있었다. 눈으로 바로 확인 가능한 한 사람의 체형이나 성별을 개그의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가장 쉽게 개그를 기획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황 씨는 “뚱뚱한 사람들을 희화화 하는 등 외모와 관련한 개그가 가장 빠르게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어서 많이 활용했어요”라며 “예전 개그계는 외모 비하나 성적인 개그를 누가 더 잘하는지 경쟁까지 붙을 정도로 성희롱에 대해 무감각한 분위기였죠”라고 말했다.

이렇듯 개그계에 만연하게 퍼진 성차별적 문화에 물들었던 황 씨였지만 자신이 직접 성희롱을 경험한 후, 성차별적 개그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황 씨는 “신인 시절에 선배가 제게 성희롱이 될 수 있는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라며 “아무리 성희롱에 무딘 분위기라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것을 보고 심각하다고 생각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황 씨는 성희롱을 직접 당하자 스스로가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황 씨는 자신이 처음으로 느껴보는 성적 수치심에 성희롱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성희롱에 대한 황 씨의 관심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느낀 내용을 개그를 창작하는 데 적용하기 시작했다. 성차별적이거나 여성 혐오적 단어가 포함된 개그를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황 씨는 그러한 개그를 최대한 지양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황 씨는 SBS 「개그투나잇」의 ‘그 말만은’이라는 코너를 통해 남녀의 간극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개그에 활용했지만 끝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내용의 코너였다. 그러나 황 씨의 노력을 알아주는 대중은 많지 않았다. 그런 황 씨를 처음 알아본 곳이 바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었다. 황 씨에게 양성평등과 관련한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해줄 수 있겠냐는 제의를 한 것이다. 제안을 수락한 황 씨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과정에서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라는 직업을 접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나홀로의 투쟁, 천천히 주변의 변화를 이끌어 내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사회 분야별로 양성평등 의식을 고양해 성평등 문화를 조성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실시하는 일을 한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총 4번의 시험과 강의 시연에 합격해야 한다. 황 씨는 “처음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어요”라며 처음 시험에 임했던 태도를 회상했다. 
강사 자격 취득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황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시작하니 내용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황 씨가 가진 고정관념이 교육 내용과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씨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황 씨는 2016년 12월 성희롱 예방 강사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다. 황 씨는 “공부를 할수록 스스로가 성차별적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됐어요”라며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 많이 바뀌었음을 고백했다.

황 씨는 자격증 취득과 함께 성희롱 예방 교육 강연을 시작했지만 교육을 듣는 청중들의 반응은 한없이 가벼웠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개그맨 출신인 황씨에게 진지한 강연이 아닌 개그를 기대했다. 난감했던 상황이지만 황 씨는 꿋꿋이 강의를 이어나갔다. 황 씨는 “물론 재미있는 내용으로 성희롱 예방교육 강연을 구성할 수 있었어요”라면서도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만드는 것도 성희롱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라며 청중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강연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끝에 황 씨는 강의 초반엔 개그로 청중의 흥미를 이끌고 이후 예방 강의에 집중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개그를 하면서 청중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후에 나올 강의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황 씨의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활동에 대해 청중 뿐만 아니라 황 씨의 지인들도 처음엔 그를 비웃었다. 황 씨는 “대부분은 제가 강사 활동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 했어요”라며 “이 일에 대해 조롱하는 경우도 있었죠”라고 말했다. 황 씨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은 이후 지인들에게도 성희롱 발언에 대한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자신이 교육을 통해 변화한 만큼 지인들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지적이 계속되자 황 씨는 아예 일에서 배제당하기도 했다. 동료 개그맨들의 발언을 황 씨가 문제 삼는 것에 대해 불만을 사람이 많은 탓이었다. 황 씨는 “제가 분위기를 망치는 만드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라며 당시 그가 느꼈던 감정을 토로했다. 

이렇듯 달라진 황 씨의 모습에 동료들은 처음엔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희롱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그의 꾸준한 노력에 동료들도 점차 황 씨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황 씨는 개그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했다. 그는 기존에 있던 유흥 문화를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이 함께 하는 문화’나 ‘성희롱 없는 회식 문화’와 같은 주제를 제시했다. 황 씨는 “제가 선배가 되고 난 후 개그맨 회식 문화를 바꿀 것을 제안했어요”라며 “처음에는 불만을 표했던 동료들도 지금은 즐겁게 회식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최소한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만큼은 성희롱이나 음담패설이 없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황영진, "'남자 구성애'로 불리고 싶어요"

개그맨으로서 성희롱적 개그 요소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성희롱 예방 강사로 활동하던 황 씨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황 씨가 데뷔 이후부터 활동해왔던 SBS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개그맨으로서 설 자리를 잃은 황 씨는 ‘기자’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다. 황 씨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어요”라며 “기자에 대한 꿈도 있었는데 출연할 방송이 없어지면서 도전을 하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황 씨는 지난 해 8월부터 잡지 ‘텐 아시아(Ten Asia)’의 연예부 소속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성희롱 예방에 대한 황 씨의 관심이 줄어들진 않았다. 기자가 된 후 황 씨는 ‘성평등 보이스’의 일원이 됐다. 성평등 보이스는 ‘Boys’와 ‘Voice’의 이중적 의미로 ‘남성들이 성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모임이다. 성평등 보이스는 민간기업 고위 임원, 문화예술인을 포함해 총 45명으로 구성돼 지난해 9월 공식 출범했다. 황 씨는 초등학교에 성평등 과목을 개설할 것을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건의했을 정도로 모임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이토록 열심히 성평등에 힘쓰고 있는 황 씨는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성희롱의 개념을 물어보는 사회’라고 답했다. 성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그 개념마저 없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 내에서의 남녀차별이 없어져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겪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날을 꿈꾼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만큼 ‘피곤하지 않냐’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황 씨는 “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힘들지 않아요”라며 열정을 보였다. 식지 않는 열정의 이면에는 남다른 꿈이 있었다. 바로 ‘남자 구성애’로 불리고 싶은 것이다. 황 씨는 “남자 중에서 성희롱이나 성교육으로 유명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라면서 “쑥스럽지만 제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라며 직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황 씨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은 이후 스스로 많이 반성했어요”라며 “이후 비하나 폭력적인 개그는 하지 않기로 했죠”라고 말했다. 이미 물들어져 있는 성차별적 문화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것이다. 황 씨는 “저도 교육을 받고 나서 성차별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 개그를 기획하는게 많이 어려웠어요”라면서도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만드는 웃음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죠”라고 스스로가 한층 성장했음을 밝혔다. 
황 씨는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거듭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육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앞으로 진행될 황 씨의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희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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