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독서]

한국인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반드시 읽게 되는 소설이「봄·봄」과 ?동백꽃」이다. 그 작가 김유정은 불우한 예술가의 삶을 통속적으로 대변한 인물이었다. 특히 당대 최고의 명창 박녹주를 향한 그의 순애보와 거절당한 첫사랑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는 일화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생애가 짧았던 만큼 김유정은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작품을 남겼다. 흔히 김유정의 작품을 해학적이고 토속적인 서사라 일컫거니와, 이러한 평은「봄·봄」과「동백꽃」 두 작품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두루 수록되면서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유사하리라 예단하면서 만들어진 오해다. 흥미롭게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들 두 작품을 제외하면 여타의 작품들은 한 편의 긴 이야기로 읽힌다. 짜장 일종의 장편소설이 된다는 말이다. 주인공의 이름만 다를 뿐 한 사내의 전기로 읽어도 무방한 연작의 성격을 띠고 있다. ‘춘호’, ‘덕만’, ‘덕순’, ‘응칠’, ‘복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이명동인(異名同人)이다. 가난하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이들 사내는 어떤 존재들인가?

「솟」의 ‘근식’은 들병이 ‘계숙’을 혼자 차지하려는 마음에 자기 집의 맷돌과 함지박은 물론 아내의 속곳까지 훔쳐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 마지막 남은 세간인 솥을 훔쳐내 ‘계숙’과 도주하려다 아내에 붙들리고 만다.「소낙비」의 ‘춘호’ 역시「솟」의 ‘근식’ 못지않은 아내 사랑을 자랑한다. 그는 노름 밑천을 변통해오라 젊은 아내를 매질로 닦달하는 게 버릇이 된 인물이다. 마을의 부자 양반 ‘이주사’의 손에 이끌려 돈 이 원을 약속받은 ‘춘호’의 아내는 그 소식을 남편에게 전하며 산골을 떠날 꿈에 함뿍 젖는다. 다음 날 ‘춘호’는 그이 원을 고이 받고자 손색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어 ‘이주사’에게 보낸다. 그런가 하면「안해」에 등장하는 사내는 아내를 들병이로 만들어 생계 방편으로 삼고자 소리 교육에 직접 나선다. 이도 모자라 「가을」의 ‘복만’은 맞붙잡고 굶느니 아내는 다른 데 가서 잘 먹고 또 자기는 자기대로 그 돈으로 잘 먹고살자며 매매 계약서까지 작성해 아내를 소 장사에게 판다. 이 루저(loser) 사내들에게는 천생연분의 아내가 있었으니, 그녀는「소낙비」에서처럼 폭력을 일삼는 남편의 노름 판돈을 빌기 위해 다른 사내에게 몸을 팔거나「산골 나그네」에서처럼 들병이를 자처하고 나서 사기결혼까지 감행하며 병든 남편과 유랑의 길 위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는 종국엔「땡볕」의 병든 ‘덕순’이 그러했듯 남편의 등 뒤에서 죽을 날을 꼽으며 눈물로 유언을 써 내려간다.

곡절 많은 김유정 소설 속 주인공 남녀의 사연을 듣노라면 우리는 한참을 넉 내놓고 웃다 마침내 눈물짓고 만다. 애잔한 신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느 평론가의 표현을 빌자면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이 생생한 일상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다. 김유정의 창작이 자신의 고향 ‘실레마을’에서 듣고 본 사건들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편견 없는 독자라면 그 사연의 주인공들이 당대 식민지 조선인의 보편적인 삶을 대변한다는 것을 능히 알 수 있다. 하여 한국적 리얼리즘의 위대한 승리라는 거창한 수사쯤은 도리어 사양해야 옳다. 시쳇말로 거기엔 1930년 식민지 조선의 ‘레알’이 헐떡인다. 이들 작품을 한 데 모아 엮은 작품집이「동백꽃」이다. 이에는「동백꽃」을 비롯해 「금따는 콩밭」,「봄봄」,「안해」,「산골나그네」,「만무방」 등 2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찍이 김유정의 절친 이상은 김유정을 모델로 소설을 쓴 바 있다. 단편「김유정ㅡ소설체로 쓴 김유정 론」이 그것이다. 이에서 이상은 김유정을 향한 걱정과 애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유정은 폐가 거의 결딴이 나다시피 못 쓰게 되었다. 그가 웃통 벗을 것을 보았는데, 기구한 수신(瘦身)이 나와 비슷하다. 늘
  “김형이 그저 두 달만 약주를 끊었으면 건강해질 텐데.”
  해도 막무가내더니, 지난 7월부터 마음을 돌려 정릉리 어느 절간에 숨어 정양 중이라니, 추풍(秋風)이 점기(漸起)에 건강한 유정을 맞을 생각을 하면, 나도 함께 기쁘다. 

이상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김유정은 결국 가난 속에서 각혈을 쏟아내다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고,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조사한 이 봄에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뽑혔다.

김병길 기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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