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독서]

버지니아 울프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영국의 시대적, 사회적, 사상적 급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선구적 페미니스트 문인이다. 오늘 소개할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은 영미문학작품이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이미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울프의 대표적 에세이작품이다. 사실 신보사로부터 책 소개를 요청받았을 때, 처음 생각했던 책은 아니다. 가을학기가 시작돼 학교 홈페이지에 미인대회에서 수상한 학생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잘 알려져 있지만 자기만의 방의 핵심을 다시 돌아보고 싶었다. 

제목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자기만의 방’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여성의 주체적 삶과 창작 활동에 필수요건임을 강조한다. ‘여성과 소설’에 대한 강연을 위해 여성들이 처한 사회적 여건을 살펴보다가, 울프는 먼저 남성들의 전유 공간이나 다름없는 옥스브리지 대학의 풍요로움과 여대인 펀햄의 열악한 현실을 경험한다. ‘여성이 왜 가난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방문한 대영박물관에서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확인한다. 남성의 우월성과 여성의 열등함이 지나치게 강조된 수많은 자료를 보면서 울프는 이런 불균형한 시각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진정한 자아 대면을 방해하며, 나아가 서구 문명의 왜곡된 우월감과 폭력성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영국 여성 작가들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울프는 진정한 글쓰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울프에게 있어 작가의 훌륭함은 단지 작가로서의 사회적 성공이나 명성에 있지 않다. 훌륭한 작가란 성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현실적 편견에 대한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져서 ‘자기 자신으로서’ 글을 쓰는 것이며, 이것이 창조성의 진정한 발휘라고 믿는다. ‘자기 자신으로서의 글쓰기’의 중요성이야말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며, 여성이 연간 오백 파운드의 수입과 사적인 공간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평등한 역사와 현실이 재생산하는 경계와 제약 가운데서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는가? 그 첫 단계는 우리 안에 내재화된 가치와 기준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울프는 “우월성을 주장하며 열등함을 전가하는 모든 행위들은 인간 경험의 사립학교 단계(초보 단계)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사회적 권위를 숭상하며, 그 권위체가 부여하는 보상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권위체의 허상을 점차 인식하는 것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우열의 기준에 질문하고 그 허구성에 눈뜨는 것이 자기 자신이 되고, 자신 안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첫 단추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인대회 수상자에 대한 우리 학교의 반복적인 홍보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물론 학생 개인의 선택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학교가 공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홍보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그 대회가 ‘외면과 내면’을 모두 중시하고 평가하기에 긍정적이라는 견해는 본질을 가린다. 외면이든 내면이든 미인대회는 ‘미’라는 가치를 측정의 대상으로 환원하고 서열화하기 때문이다. 그 서열의 기준과 주체에 대한 질문은 흔히 무마된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특정한 기준과 행위가 어떻게 우리 안에 내재화된 구조로 작동하는지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너무나 깊숙하게 내재화돼 내재화되었다는 사실도 잊고 우리 안에 숨 쉬는 세포들처럼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기준과 가치를 말한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사실 이 내재화된 기준에 대한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 안의 창조성과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 안에 내재화돼 끊임없이 서열화와 우열의 경계를 부추기는 기준과 구조에 대해 질문하라! 그것이 첫걸음이다.

박소진 영어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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