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강의]

[글쓰기는 자신과의 ‘끝장토론’이다.] 끝장토론, 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 노트북을 열고, 이메일 편지나, 짧은 보고서, 또는 자기소개서를 써보라. 희미하고 잡다한 재료가 빈곤한 내 생각 위에 얹혀서 올라온다. 당장 마음 한쪽이 그 얘기를 꼭 하고 싶은 건지, 심지어 ‘글쓰기’라는 것을 하고 싶은 건지, 곧바로 의문을 제기한다. 꾹 참고 써 봐도, 여기저기 엉키고, 논리도 빈약한 내용들이 올라오면, 마음먹은 글쓰기는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되거나, 기약 없는 다음 기회로 미뤄진다. 끝장토론, 하기도 전에 밀린 것이다. 하루의 말미에 쓰는 시시한(?) 일기도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는 것은 결국 소중한 자기 삶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허망한 대학 4년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그의 소중한 청춘은 바람 속으로 그냥 사그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일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나 버릴 것이다. 대학생이라면, 대학 4년도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릴 것이다. 허겁지겁 달려온 4년, 졸업장만 달랑 하나 가지고 사회로 나가보라, 누가 졸업장에 의미 있는 눈길 한번 주는가. ‘너는 대학 4년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지냈니’라는 질문에 빈손을 바라보며 그만 고개 숙이고 말 것이다. ‘대학 4년 자기보고서’, 당당히 내놓도록 준비하라. 

[글쓰기는 내면생활의 ‘정리해고’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누구나 다 하는 건 아니다. 하루의 생각을 모아서 글로 적어보면, 단지 몇 개의 어휘로 핵심을 보여주기도 하고, 긴 하루였다면서 작심하고 적어 봐도 보잘것없는 자신의 모습만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가 하루 종일 구사하는 어휘의 양은 수 만자를 넘는다는 보고가 있지만, 그까짓 거 하는 일기도 자기 생각의 상당 부분을 정리하고, ‘구조조정’해야 하루의 일상이 의미 있었는지 반성의 글쓰기라도 할 수 있다.

[글쓰기는 한 번으로 끝내는 활동이 아니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다음 회차의 글쓰기는 오늘에 힘입어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 생각도 점차 축적이 된다. 자신과 주변, 어제와 오늘을 관통하며, 그사이 지나갔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버리고 나면, 다음 단계로 도약할 마음 밭이 준비된다. 오롯이 증거가 남는 행위이다. 소중한 것들을 우아하고도 지성적인 ‘자태’, 즉 글쓰기로 붙잡아두는 것이다.
지금 바로 노트북을 펴고, 자신에게 보내는 [주간보고서]부터 쓰기 바란다. 자신의 ‘주간인생’이 그날이 그날 같아서 지루할지, 아니면 새로운 자기발견 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수업활동보고서, 알바보고서, 또는 치열한 경쟁보고서, 아니면, ‘대학생활 선전포고’가 될지 알 수 없다. 그날의 외침 속에는 지금 씨름하는 문제, 피하고 싶은 문제들이 눈앞에 훤히 드러날 것이다. 그것을 골칫거리로 여기지 말라. 그대로 문제가 열리도록 생각의 밑바닥까지 파고 또 파보기 바란다.

결국에는, 대학 졸업장 외에 [4년의 자기 혁명 스토리]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글쓰기 수업을 평생 지도해 온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자신에 대해서 건질 것 보다는 버릴 것이 많다고 자조하는 우리들에게 [글쓰기]는 낙심하지 않고, 힘든 세상을 이겨나가는 내공을 키워줄 것이다.


황선혜 영어영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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