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기행]

▲영화 속 로라가 갔던 플로리다의 빌트모어 호텔


영국과 미국, <디 아워스>
영화 <디 아워스>(2001)는 미국의 소설가 마이클 커밍햄(1952~)의 퓰리처상과 펜 포크너상 수상작인 『세월(The Hours)(1999)을 원작으로 영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가 영화화한 것이다. 작가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버지니아 울프의 모더니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고등학교 때 읽고 가슴 깊이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세 시공간 즉,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쓰는 버지니아 울프, 1949년에 미국 LA에서 이 소설을 읽는 로라 브라운, 1990년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의 주인공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출판편집자인 클래리사 보언이라는 세 여성의 삶을 반복병치시킨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세 여성이 하루 동안 겪는 일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요소인 상호텍스트성으로 버지니아 울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디아워스>에서는 소도구, 음악, 편집 등 여러 장치를 통해 쓰는 자, 읽는 자, 행위하는 자라는 세 시공간의 상호텍스트성을 구현하고 있다.

<디 아워스> 영화인문학기행은 먼저 버지니아 울프의 자취를 따라가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남편인 레너드 울프는 편두통과 우울증이 심한 버지니아가 복잡한 런던생활에서 벗어나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여, 런던에서 기차로 30분 걸리는 리치몬드라는 소도시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리치몬드는 소도시지만 강을 끼고 있는 부촌이어서 어디를 찍어도 멋진 집들과 거리가 많다. 울프 부부는 집 지하에 호가쓰 출판사(1916)를 설립하고 버지니아의 책 등을 출간하며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다른 회사가 사용하고 있지만, 2층 건물 앞에는 울프 부부의 호가쓰 출판사의 연혁이 씌어 있는 표지판이 있다. 실내 이곳저곳의 벽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이 걸려 있어, 액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영화 <디아워스>에서 LA에 사는 로라의 집 로케이션은 LA가 아니라 플로리다에서 대부분 찍었다. 남들이 보기엔 부족할 것 없이 행복해 보이는 주부지만, 『댈러웨이 부인』의 주인공 클래리사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로라가 집을 떠나 자살시도를 했던 호텔은 마이애미에서 가까운 빌트모어 호텔(1926~)에서 찍었다. 호텔이 있는 아나스타샤 거리는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는 멋진 집들이 즐비하여 호텔을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눈이 즐겁다. 호텔 내부도 럭셔리하면서도 품격 있는 장식과 가구로 꾸며져 있다. 그리스 신전처럼 기둥이 많은 호텔 발코니를 들어서는 영화 속 로라처럼 인증 쇼트를 찍는 재미, 호텔의 디테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남다른 곳이다.

뉴욕에 사는 클래리사 보언의 남자친구 리처드가 사는 집은 영화 속에서 클래리사가 전화로 렌트카 예약확인을 하며 말하는 주소인 허드슨가 679번지다. 건물 1층은 현재 레스토랑이고 뉴욕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붉은색 벽돌로 된 건물이다. 리처드가 창가에서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 영화의 장면을 그려보면서 바라보면 리처드의 감수성과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디 아워스> 영화인문학기행은 남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가진 삶을 추구하지만, 여전히 존재론적 허무감을 벗어날 수 없는 세 시공간 속 인물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을 가슴으로 체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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