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왜?” 필자가 숙대신보에 몸담고 있던 시절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질문이었다. 왜 하필 지금 이 기사를 이 시기에 써야 하는가. 왜 이 기사를 독자가 읽어야 하는가. 기자는 기사를 통해 독자의 모든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성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이 기준을 갖고 숙대신보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과연 물음이 해소됐을까.

취재면은 그나마 낫다. 그때그때 학내에서 발생한 사건, 행사를 취재해 다루기 때문에 시의성에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눈송이 디자인 공모전’ 대상 수상자 인터뷰를 보자.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은 ‘왜’ 들어갔을까. 왜 독자들이 이 학우가 눈송이 디자인은 취미로만 할 거란 사실을 알아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문이 해소되질 않는다.

문화, 여성, 사람면은 “왜 하필 지금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답해주지 못한다. 물론 여성사 전시관 기사는 여성의 날과 연관된 아이템이다. 하지만 여성의 날을 맞아 여러 소재 중 왜 하필 여성사전시관을 조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소셜다이닝은 쌩뚱맞기도 하다. 시의성과도 관련이 없고, 소셜다이닝이 증가했다는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기사의 생명은 디테일이다. 학보라고 괜찮다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작은 물음 하나하나에도 답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이 없다면 독자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 이제라도 날카로운 잣대로 숙대신보를 바라보자. 지적은 뼈아플 수 있어도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지금보단 나아진 숙대신보를 기대한다.

 

독자위원
윤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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