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기행]

▲ 셰익스피어 방에서 당대 의상을 입은 관리인과 함께 17세기 속으로


영국, 햄릿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못 넘긴다.”라는  말을 남겼고, 비평가 칼라일이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한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 그에게 붙여진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다. 셰익스피어(1564~1616)는 수없이 공연되고 상연되는 연극과 영화 속에서 우리 곁에 살아있다. 이번에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한 ‘햄릿’과 함께 영화인문학기행을 떠나보자.

우리가 <햄릿>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하는 명대사일 것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그것은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요” 등 수많은 명대사를 쓸 수 있었던 셰익스피어만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셰익스피어는 영국 중부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도시로서는 자그마하지만, 분위기도 밝고 아기자기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작품은 희극과 비극이 골고루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 센터에는 여러 내용이 전시되어 있고, 기념품숍에는 깃털 펜 등 독특한 기념품도 많으며, 바로 옆에 생가가 있다. 생가는 저택처럼 크지는 않으나 2층 목조건물로 당시 중인계급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정원도 잘 가꿔져 있고, 집 실내에는 16세기 물건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25살 즈음에 런던에서 극작가 겸 단역 배우 생활을 하는데,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은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그 시대에 지어져 지금까지 공연하는 런던의 ‘셰익스피어글로브’라는 목조건물로 지어진 극장에서 촬영되었고, 기네스 펠트로가 셰익스피어와 연극을 좋아하는 여주인공을 맡았다. ‘셰익스피어글로브’에서는 지금도 셰익스피어 작품을 공연하고 있는데, 여기서 공연을 보면 셰익스피어극이 더욱 실감이 난다.

<햄릿>을 썼던 시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이가 많이 들어 많은 국민들이 영국의 후계를 걱정하며 불안해하고 있을 때였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서 왕가의 몰락을 보여주고 ‘후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볼 수 있다. <햄릿>은 덴마크의 역사 속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사건으로는 아주 간단한 기록이었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키호테’와 대비되는 신중하면서도 사색적인 캐릭터 ‘햄릿’을 창조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이야기와 오필리아와의 사랑 등 삶의 다양한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여러 사건으로 전개되면서 흥미와 깊이를 함께 전해주는 <햄릿>은 셀 수 없이 많이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또한 10여 차례 영화화되었다. 가장 유명한 영화로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감독과 햄릿을 역을 맡은 영화다. 원작의 내용을 잘 살리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구성으로 영화적 매력도 갖춘 흑백영화다. 1992년 프랑코 제프렐리가 감독한 영화는 영화음악계의 거장 이탈리아의 엔리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아 장중한 분위기를 잘 전해주며, 멜 깁슨이 ‘햄릿’을 맡아 분노하는 햄릿, 복수하는 햄릿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여러 차례 영화화한 바 있는 캐네스 브레너가 주연과 감독을 1996년 버전은 19세기 말 제정시대로 바꾸고 클래식 음악을 배경음악을 사용하여 품격을 더해준다. 2015년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햄릿역을 맡은 연극의 공연실황이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셰익스피어 생가와 셰익스피어글로브 방문은 그가 마치 친척이라도 되듯 가깝게 느껴지며 작품에도 더욱 애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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