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톱,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쪽방촌 골목을 누비는 한 남성이 있다. 위험한 공구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자칫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는 사실 쪽방의 추위를 녹일 만큼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남자, 김정호(남·58) 씨다. 김 씨는 현재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선반을 무료로 만들어 주는 ‘쪽방촌 선반지기’로 활동 중이다.

바람이 매서웠던 지난달 14일(화), 본지는 3년째 사람들에게 선반을 만들어 주고 있는 그의 온기를 느끼고자 ‘동자동 사랑방 공제협동조합(이하 동자동 사랑방)’에 방문했다.

나무로 사랑을 만들어요
동자동은 쪽방이 밀집돼 있어 ‘쪽방촌’이라고 불린다. 쪽방은 건설교통부 장관이 정한 최저 주거기준인 12㎥보다 작은 한 평 정도 크기의 방으로, 도시 빈민 주거형태의 하나다. 사람 한 명 눕기에도 작은 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수납공간 부족 등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다. 선반지기는 그들의 불편을 덜어 주고자 선반을 달아주고 발판을 만들어 주는 등 여러 가지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모두가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에요” 김 씨가 쪽방촌 선반지기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5년 4월이었다. 당시 목수 생활을 했던 김 씨는 당뇨합병증을 앓아 탈수가 심해 거동이 불편한 이웃을 위해 방 입구에 발판을 만들었다. 이웃이 한결 편하게 거동하는 것을 본 김 씨는 뿌듯함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김 씨는 선반지기로 꾸준히 활동하는 동자동 이웃 십여 명과 함께 선반지기 모임에 들어가게 됐다.

김 씨는 “선반지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여러 가지를 만들어요”라며 웃음을 보였다. 선반뿐만 아니라 신발장이나 발판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용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방의 전등 스위치가 고장 나면 제가 가서 고쳐 드리죠”라며 “신발장이나 밥솥을 올려놓을 받침대도 많이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밥솥 받침대 같은 것들이 크기는 작지만, 오히려 선반보다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요”라고 덧붙였다.

김 씨가 활동하는 선반지기 모임은 동자동에 위치한 동자동 사랑방에 속해 있다. 동자동 사랑방은 2007년부터 운영된 공제협동조합으로 동자동 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단체다. 동자동 사랑방에 선반 제작을 요청하면 신청한 순서대로 선반을 만들어 준다. “부득이한 경우엔 순서가 늦더라도 우선으로 만들어 드리기도 해요” 신청한 순서대로 선반을 제작하는 게 규칙이지만 선반이 시급한 이웃에게 먼저 선반을 제작해 주기도 한다. 선반 제작은 공식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매주 목요일에 진행된다. 하지만 선반 제작을 요청하는 이웃들이 많아 김 씨는 일주일에 2번에서 3번 정도 작업을 위해 이곳에 방문하고 있다.

선반 작업은 주로 동자동 사랑방 앞 길가에서 이뤄진다. 선반을 만들 때면 김 씨는 선반이 필요한 쪽방에 찾아가 방의 넓이를 재고 그것에 맞게 선반을 제작한다. 김 씨는 “선반을 제작할 마땅한 장소가 없는 게 가장 힘들어요”라며 “공간이 없어 주로 동자동 사랑방 앞 길가에서 제작하죠”라고 전했다. 이어 “사람이나 차가 지나갈 때 통행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죄송해요”라고 덧붙였다.

제작한 선반을 달기 위해 쪽방에 방문했다가 방을 청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 씨는 “몸이 불편한 이웃들이 많아서 저희가 많이 도와드려야 해요”라며 “다른 이웃들도 서로 돕겠다며 저와 함께 집을 방문하곤 해요”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봄을 기다리는 쪽방촌 이웃들
선반지기 활동을 하며 선반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동자동 사랑방에서 지원하고 있다. 조두선(남·58) 동자동 사랑방 대표는 “이웃들이 조금씩 후원을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에요”라며 선반지기 활동을 지원하는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내비쳤다. 지난 2016년엔 용산구에서 진행된 ‘마을공동체’ 사업에 선정돼 선반을 만들기 위한 비용을 지원받기도 했다. 용산구는 마을공동체 사업에서 공모를 통해 동 혹은 구 단위에서 주민들이 직접 고민하고 시행하는 다양한 분야의 공동체 사업을 선정해 지원했다. 조 대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알고 지원해준 구청에도 고마워요”라며 선반지기 활동에 관심을 둔 용산구청에 고마움을 표했다.

김 씨는 선반지기 활동을 통해 2015년엔 40가구, 지난해엔 65가구에 선반을 제작해 줬다. 지난해 선반을 만들어 준 65가구 중 20가구는 구청에서 지원받은 비용을 통해 선반을 제작했다. 선반 제작 외에도 동자동 사랑방은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병원 방문이 어려운 노인들과 함께 병원에 방문하거나 장례를 치르는 등의 봉사를 하고 있다. 선반지기 활동과 더불어 대표적으로 하는 활동은 ‘사랑방식도락’이다. 조 대표는 “사랑방식도락은 밥, 찌개, 반찬 등을 만들어서 제공하고 식비로 1,000원을 받는 활동이에요”라며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쪽방촌 이웃들을 위한 것이죠”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대표는 “동자동 이웃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교류가 없어 서로에게 가족 같은 존재예요”라며 “서로서로 챙기며 도와주죠”라고 이웃 간의 정을 과시했다.

선반지기 활동은 겨울을 제외하고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다. 겨울에는 추운 날씨 탓에 선반지기들의 몸이 아플 때가 많아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모두가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라며 “선반 때문이더라도 이웃들이 저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뿌듯해요”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쪽방촌에서 마음까지 나눴어요
지난해 용산구는 이웃의 따뜻한 정이 모여 마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27가지 사례로 묶어 ‘마을이야기’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엔 사례 중 하나로 김 씨의 선반지기 활동이 실렸다.

자랑스러운 일임에도 김 씨는 선반지기 활동을 책자에 싣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김 씨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한 일이 아니라서 생각이 많았죠”라며 “하지만 책자를 발간하면서 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참하게 됐어요”라고 수줍은 듯이 말했다. 책자가 발간된 후 김 씨는 책자의 맨 뒷장에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 이웃들에게 선물하기 시작했다. 평소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적어 건네는 것이다.

이웃들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김 씨. 그는 “선반을 달아드리면 고마운 눈빛으로 절 쳐다보는 게 느껴져요”라며 흐뭇해했다. 선반을 달기 위해 찾아간 집을 청소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김 씨는 “아픈 이웃들의 방을 청소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라면서도 “하지만 마음을 담아서 돕는 것이 스스로 기쁨을 주더라고요”라고 전했다. 김 씨는 동자동 이웃들은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가족이라며 이웃과의 돈독함을 보였다.

한편 진심으로 이웃들을 돕고 싶어 선반지기 활동을 하는 김 씨에게 종종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보여주기 위한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타까워요” 지난해 김 씨는 한 봉사단체에서 거동이 불편한 이웃의 방에 놓을 침대 제작을 부탁받았다. 김 씨는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침대를 제작했지만, 며칠 뒤 당사자는 침대가 불편해 치워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김 씨를 찾아 왔다. 김 씨는 “부탁대로 침대를 치워드렸는데 나중에 봉사단체에서 저에게 화를 냈어요”라며 “당사자가 불편한 것보다 봉사활동 한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던 거죠”라고 씁쓸한 마음을 내비쳤다.

누구보다 이웃들을 생각하고 선반지기 활동에 뿌듯함을 느끼는 김 씨지만 그에게도 힘든 점은 있었다. 김 씨는 “저혈당이 심해서 일을 하다 보면 어지럽고 힘들 때가 있어요”라며 “힘들어도 선반을 완성해야 하니까 내색하진 않죠”라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선반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선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선반지기 활동을 그만두지 않고 있다.

김 씨는 “이웃들에게 순간적인 동정심을 느끼고 하는 활동이 아니에요”라며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가 되는 한까지 계속 만들어 드릴 거예요”라고 말했다. 조 대표 역시 “이웃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동자동에 이웃이 있는 한 동자동 사랑방은 계속 그들을 도울 거예요” 조 대표는 “동자동 이웃들이 있기에 동자동 사랑방이 존재할 수 있는 거죠”라며 동자동의 이웃들을 위해 활동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본인 또한 어려웠던 시절에 동자동 사랑방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도움을 받아 지금처럼 웃을 수 있게 됐으니 이제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싶어요”라며 동자동 이웃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비좁은 쪽방에서 사는 그들이지만 이웃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셀 수 없을 만큼 넓을 것이다. 김 씨는 “내가 있는 곳엔 우리 이웃들이 있고, 이웃들 있는 곳엔 제 흔적이 남아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이웃의 방에 있는 선반을 뿌듯하게 매만졌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어요”라던 조 대표의 말처럼 동자동 쪽방촌의 이웃들에게 피를 나눈 가족은 없지만, 서로의 가족이 돼 함께 걷는 길이 고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 쪽방촌 선반지기 김정호 씨가 선반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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