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강의]

프랑스 작가 기욤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는 캄보디아에 의료봉사 로 온 주인공 수현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현지 노인이 수현에게 ‘바라는 소원이 있는지’를 캄보디아어로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영화관 스크린에 이 장면에 대한 한국어 자막이 없었더라면, 주인공이 캄 보디아어를 전혀 몰라 대답을 못 했더라면, 이 영화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어떻게 한국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었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번역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의 소통방식입니다. 번역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번역되지 않은 외국어 텍스트는 그저 낯선 기호로만 남게 됩니다. 낯선 외국어를 사용하는 외국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종종 소통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소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 사람들끼리도 서로 오해하고 반목하고 갈등을 겪는 모습에서 우리는 번역의 필요성과 본질을 발견합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어원을 가진 단어 ‘translate’는 텍스트 단위의 전이를 일컫는 ‘번역’ (translation)과 발화 단위의 전이를 의미하는 ‘통역’ (interpretation)을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영화배우의 기자회견 때 통역사를 지칭하면서 ‘interpreter’ 대신 종종 ‘translator’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번역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번역학에서는 번역의 범주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 서로 다른 언어사이의 전이를 의미하는 ‘언어간’(inter-lingual) 번역과, 같은 언어사이의 전이과정인 ‘언어내’(intra-lingual) 번역, 그리고 서로 다른 기호체계사이의 전이에 해당 하는 ‘기호간’(inter-semiotic) 번역으로 분류합니다.

‘언어 간’ 번역은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의미와 맥락을 옮기는 개념으로 외국어의 한국어 번역이나 한국어의 외국어 번역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언어 내’ 번역은 같은 언어 안에서 이루어지는 번역을 말하는데 한국어 내에서도 번역이 필요하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금융 용어로 가득 찬 한국어 경제신문 기사는 일반 독자 에게 번역이 필요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는 남자친구의 변명도 번역이 필요하고, 국수가게 욕쟁이 할머니의 친근한 욕도 번역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가족 간에 갈등과 상처가 생기는 것은 결국 번역되지 않은 상태로 서로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기호 간’ 번역은 하나의 기호를 다른 기호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소설 텍스트를 영화라는 표현양식으로 전환한 기욤의 원작소설이나,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노래로 표현한 마야의 ‘진달래꽃’, 또는 그림과 상징으로만 되어 있는 횡단보도 표지판을 보고 운전자가 차를 멈추는 것 역시 ‘기호간’ 번역에 해당합니다. 한 걸음 더 나 아가, 인공지능 번역기라고 하는 구글 번역기나 네이버 파파고 역시 인간의 언어를 0과 1만을 사용하는 컴퓨터 이진법을 통해 옮긴다는 점에서 ‘기호간’ 번역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번역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언어 간’ 전이에서 출발해서,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범주를 넘어서 기술을 포함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층 위의 소통을 꿈꾸는 인문학적, 융합적 도전입니다.
 

이형진 영어영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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