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숙케치]

 

올해 6월 말 나는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인 두린(Doolin)에 3일 동안 머물렀다. 내가 그곳에 머문 이유는 무려 초등학교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웨스트라이프의 뮤직비디오를 점심시간마다 틀어주셨다. 열창하는 외국인들 뒤로 바다 한끝 앞의 높고 끝없이 펼쳐진 절벽이 나왔다. 감성이 폭발하는 초등학교 5학년을 사로잡은 현실 같지 않은 절벽 배경. 9년여의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절벽을 걸어서 오갈 수 있다는 마을인 두린에 머물게 된 것이다.

두린은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숙소 앞엔 개울이 흘렀고 숙소 앞 풀밭에서 가열(苛烈)하게 풀을 뜯는 당나귀는 평화로운 풍경의 정점을 찍었다. 나에겐 전날 숙소에서 친구가 된 동행인이 있었다. 터키인 대학원생 듀구(Duygu), 미국인 뮤지션 브렛(Brett) 그리고 잘생긴 독일인 루카스(Lucas). 우리는 모두 혼자 여행 중이었고 전날 밤 대화한 뒤로 꽤나 친해졌다. 브렛의 제안으로 아침에 꼭 밖에서 요가를 하려했지만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넷은 아침부터 벽난로 앞에 둘러앉았다. 나와 루카스는 밀린 여행일기를 쓰고 각자의 언어로 간단한 메모도 남겨줬다. 비가 그치지 않자 우리는 체스를 뒀다. 브렛은 기타를 꺼내 자작곡 ‘Rise’를 연주했다.

오후 1시쯤 비가 그쳤다. 우리는 절벽으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절벽 끝으로부터 불과 2-3미터 떨어진 좁은 길의 오른 편엔 대서양이 하늘과 맞닿아있었다. 무섭도록 깊은 남색의 바다, 거품 섞인 파도 위에 풀어해쳐 친 하늘 그리고 현실감 없는 기암절벽들. 멍하게 서있는 것도 잠시, 곳곳의 발을 헛디뎌 목숨을 잃은 이들의 묘비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아일랜드에선 어느 펍(pub)을 가든 빠르고 경쾌한 템포의 전통 아이리시 음악을 즐길 수 있는데, 우리가 방문한 펍에서는 할아버지들의 힘찬 보컬이 함께했다. 굉장히 흥겨웠다. 빠른 템포에 맞춰 사람들은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발을 굴렀고 붉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마구 인사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금방 취한 채로 분위기에 녹아들었고 그렇게 음악과 술과 인연들과 함께 새벽을 넘겼다.

서상민(중어중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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