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친척들이 놀러왔을 때 친척 동생들이 저들끼리 무슨 놀이를 하는 건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아이고, 머리야. 밑 집에서 쫓아 올라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서재로 대피했다. 별안간 벌컥 문이 열리더니 애들이 들이닥쳤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무지게 책 한권을 쥐고서. 맏형인 열 살짜리가 갖고 온 책은 『알쏭달쏭 과학상식』이었다. 읽어 달라 할 때는 언제고, 들을 생각이 없어 보여 핸드폰을 주고 거실로 내보냈다.

“도마뱀은 스스로 위험을 느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꼬리를 잘라 놓고라도 도망을 간다. 도마뱀의 꼬리 이음매는 잘 잘리게 돼 있으며, 잘리면 몇 번이고 다시 나온다.”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 현상은 도마뱀이라는 파충류에게서만 볼 수 있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어쩐지 필자는 이 도마뱀이 낯설지가 않았다. 꼬리를 자르고 헐레벌떡 도망가는 저 모습. 어디서 많이 봤는데 말이지.

스무 살 무렵, 잠깐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주문과 다른 피자가 나올 때면 그 누구도 자기 잘못을 선뜻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직원들끼리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고, 나중엔 주문한 손님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공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친구는 막내 아르바이트생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던 선배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도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문제해결은 뒷전이요, 일이 터지자마자 도망치기 바쁜 사람들의 소식은 뉴스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말단 사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세상의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기업이 부지기수다. 꼬리야 자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도마뱀들.

사람들은 책임지는 게 무서워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도마뱀이 됐다. 꼬리가 없다는 흔적인 꼬리뼈가 무색할 정도로 계속해서 꼬리를 만들어냈다. 꼬리가 잘려나간대도 걱정할 것은 없었다. 꼬리는 몇 번이고 다시 나오니까. 꼬리는 계속 잘려나가고 몸통은 점점 비대해진다. 잘려나간 꼬리들은 팔딱거리며 마지막 발악을 해보지만 안타깝게도 금세 생명력을 잃고 만다. 길바닥은 잘려나간 꼬리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다.
단미(斷尾). 잘려나간 꼬리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 찬 이천십육 년.

아, 지금은 파충류 시대. 여기는 도마뱀 세상.
 

이소록(정치외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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