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9월 12일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릭터규모 5.8의 지진이 여전히 400여 차례의 여진을 동반하며 우리를 흔들고 있다. 이번 지진은 1978년 9월 속리산 근처에서 발행한 릭터규모 5.2를 훌쩍 넘어 선, 40년래 가장 높은 수준의 강도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 지진에 의한 직접적인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진이 이대로 잦아 들기만 한다면 외형적 피해 측면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간 작은 에피소드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지진이 흔든 독특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지진을 둘러싼 몇 사안들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시각이다. 견고한 태도로 일축하던 지진에 대한 몇 견해가, 지진 後 흔들리며 균열을 일으킨 것을 볼 수 있다.

흔들린 사안 중, 하나는 지진의 전조(前兆)를 대하는 그들의 견해이다. 이번 지진이 발생하기 전, 이미 부산과 울산을 포함한 경주 부근의 남부 지역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자연 현상들이 연달아 발생한 적이 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7월 23일 발생한 부산 ? 울산 지역 가스  냄새 소동이었다. 부산 해운대구와 남구를 지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산되어 갔던 원인 불명의 가스 냄새를 당시 많은 시민들은 지진의 전조가 아닌가 의심했던 것이다. 같은 날 거제도 해수욕장에서는 심해어로 잘 알려진 산갈치가 떠올랐고, 8월 초순에도 부산 광안리(4일), 경북 영덕(7일), 경남 거제(8일) 등지에서 산갈치가 연달아 떠올랐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강진 열흘  전인 8월 30일에 있었던 울산 태화강에서의 이상 현상도 보고되었다. 수만 마리의 숭어 떼가 검은 밧줄처럼 일렬로 떼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한 시민의 영상에 포착된 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시민들은 직관적으로 지진의 전조들이 아닌가 우려했지만, 이에 대해 그 즈음 전문가들의 시각은 확고했다. 가스 냄새에 대해, 환경부를 위시한 합동조사단은 “부취제 냄새와 화학공단에서 생긴 악취”로 보았고, 잇따라 떠오른 산갈치에 대해,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먹이를 찾아 냉온대의 교차 해역으로 올라온 결과”로 보았다. 또 울산 태화강에서 수킬로의 행렬을 지어 이동하던 숭어 떼에 대해, 해양수산과학원의 연구원은 “산소가 부족해서 바다로 가던 모습”일 뿐으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지진 후, 이러한 태도는 조금씩 균열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동하던 숭어 떼에 대해 그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일렬로 그렇게 이동했는지는 연구해 볼 문제”라 하였고, 산갈치에 대해서도 이 물고기를 일본과 동양권에서는 지진어(地震魚)라고 속칭하는 만큼 지진과의 연관성은 가설로서는 충분히 성립가능하다는 입장을 열어 두기 시작했다. 또 8월말 부산 ? 울산 지역의 가스 냄새에 대해서도 경북대의 어느 교수는 “이 냄새가 셰일이란 검은색 암석이 파쇄되며 나온 것”이라는 추정을 공개적으로 행하고 있다. 모든 것이 지진이 흔든 전문가 집단의 시각 변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흔들린 또 다른 사안은 “한국은 릭터규모 5.5 이상 지진의 안전 지대”라는 전문가들의 신념이다. 릭터규모 5 미만의 중진(中震) 등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도 예외지는 아니라는 견해가 이미 대두되어 있었지만, 규모 6 이상 강진(强震)의 안전지대라는 보수적 학설은 이번을 계기로 확실히 균열이 일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대의 어느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를 잘 대변한다.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과거에는 5.5 지진도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이제 기준이 6.5로 올라갔다.”

결국 이번 지진은 외형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다른 면으로 볼 때, 그간 안일하게 유지해 오던 전문가들의 지진을 대하는 보수적 시각에 충격을 가하고, 정반합(正反合)의 기반이 될 균열을 유도한 의미 또한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수습이다. 외형적 균열은 이미 수습에 착수했다고 하니 더 이상 언급할 것은 없지만, 내적 충격과 균열은 어떻게 발전적으로 수습 ? 승화시켜 나갈 수 있을지가 우리의 유의미한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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