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비슷한 뜻의 ‘Make haste slowly’라는 영어 속담도 있는 것을 보면, 급함에 대한 견제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해 내려오는 지침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급하면 지름길을 찾거나 택시를 타지, 일부러 멀리 돌아가지 않는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도착하지 않은 친구가 “늦어서 돌아가는 중이야.”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지난 10일, 한 30대 회사원이 출근 전에 급히 먹은 빵과 우유가 기도에 막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5년 10월에는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1만 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입장하는 과정에서 11명이 숨졌고 160여 명이 다쳤다. 1990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에서 1,425명의 이슬람교도들이 압사하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각기 다른 시ㆍ공간이었지만 이들의 사인은 공통적으로 ‘급했다’는 것이다. 30대 회사원은 급하게 먹었고 콘서트 관객들과 이슬람교도들은 급하게 가려고 했다.


돌아가면 될 일을 서두르도록 종용하는 것이 마감시간이다. 과제 제출시간, 등교시간, 은행 폐점시간 등 각종 마감시간들이 늦은 자들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제 시간 안에 주어진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많은 사건ㆍ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중의 제일은 신문ㆍ잡지사의 원고마감시간이다. 데드라인(deadline)이라는 말 그대로 신문ㆍ잡지사의 마감 날은 죽음의 끈들이 기자들의 목을 죄는 전쟁터 현장이다. 멀리 찾을 필요도 없이 숙대신보사 마감 날도 마찬가지다. 조판작업을 마친 신문지면을 인쇄소에 보내야 하는 토요일 6시가 다가오면, ‘급인쇄’ ‘급결정’ ‘급수정’ 등 한 개그맨이 유행시킨 접두사 ‘급(急)’이 범람한다.


필자가 숙대신보사에 입사한 후 지금까지 총 35호에 신문을 발간했으니, 방중과제나 앞으로 남은 신문발행을 합산하면 퇴임까지 약 40번의 마감을 치른다는 과학적인 통계가 나온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은 몇 십 년 기자생활 끝에 잇몸이 다 내려앉았다고 하는데, 거울로 내 잇몸을 들여다보니 앞으로 400번은 너끈히 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남은 마감은 단 한번. 일주일 후면 기사를 뱉어내라고 재촉하는 커서나 마감 날 새벽에 마주하던 말랑말랑한 돼지고기와도 안녕이다. 항상 정신없이 바빴던 마감이었지만 이제 딱 한번 남은 마감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선조들의 말씀을 따라볼까 생각하는데, 원고를 재촉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어떤 것이든 예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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