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윤나영 기자 yoonna_10@naver.com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면 어떤 시선을 보내는가. 만약 장애인을 보자마자 이상하다는 시선을 보내거나, 나와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황급히 돌린다면 당신도 ‘시선의 폭력’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길을 지나가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는 사람의 시선에 민망하고 불쾌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장애인도 자신의 겉모습만으로 마치 다른 세계 사람인 양 바라보는 그 시선들에 불쾌함을 느낀다. 더 나아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자책한다.

『시선의 폭력』의 저자 시몬느 소스는 이처럼 ‘타인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나 그 시선이 폭력을 행사한 것과 동일한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것’을 ‘시선의 폭력’이라 정의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시선의 폭력에 자주 노출된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장애인에게 보내는 동정의 시선,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담긴 이상한 눈초리는 매 순간 그들에게 상처가 된다. 장애인과 대화는커녕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인상을 찡그린 채 장애인을 여러 번 훑어보는 우리의 시선은, 장애인에게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온다.
 

◆ 시선의 폭력으로 극심한 고통 느껴
혹자는 시선을 ‘폭력’에 비유한 것이 과격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장애인에게는 그 시선이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익명의 시각장애인 A 씨는 *백색증을 앓고 있어 머리와 피부, 눈동자가 모두 하얗다. 그가 집을 나설 때면 주위의 시선이 모두 집중된다. 그 시선들은 스스로를 ‘비정상’이라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를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이라도 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 수면제를 한 움큼 쥐어 소주와 함께 삼켜버린 적도 있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A 씨의 이야기는 장애인들이 느끼는 시선의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장애 유형은 서로 다르지만 장애인은 저마다 시선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그중 시선의 폭력을 가장 많이 느끼는 이들은 바로 안면 장애인처럼 비장애인과 다른 외형적 모습을 가진 이들이다. 한 안면 장애인 B 씨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마치 괴물 보듯 바라본다”며 “가끔 나 스스로가 정말 괴물같이 느껴질 때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적·자폐·정신 장애인에게는 차별적 시선과 함께 ‘경계의 시선’까지 따라붙는다. 지적·자폐·정신 장애인이 정신 이상이나 이상 행동을 해 본인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편견으로 이들을 경계하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 이승현 팀장은 “중·고등학생에게 ‘정신 장애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더니 ‘무섭다’는 대답이 나왔다”며 “그러나 그들의 이상 행동은 단순히 불안감을 없애려는 방법일 뿐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경계와 우려가 섞인 시선들은 장애인에게 좌절감과 우울감을 야기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좌절과 우려는 개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팀장은 “많은 장애인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에게 익숙한 생활반경 안에서만 생활한다”며 “하루 종일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장애인도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한 시위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장애인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시몬느 소스는 장애인을 향한 시선의 폭력을 두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시선’과 ‘장애인을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저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시선이 장애인 복지 제도에 있어서 소홀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가 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향해 곱지 못한 시선의 밑바탕에는 ‘차별’이 깔려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분위기가 차별적 시선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 팀장은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지적 장애 학생이 부당함을 겪더라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하기보다 외면하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실제 한 아이는 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이 괴롭힘을 받는 상황에서 부모로부터 “그냥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 이 팀장은 “이 사례는 부모가 행한 잘못된 장애인 인권 교육이 ‘시선의 폭력’을 저지르는 비장애인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행하는 시선의 폭력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 팀장은 “현재 제도상에선 장애인이 자신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며 “지하철의 경우 역무원이 장애인용 교통카드를 찍은 사람이 ‘실제 장애인’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장애인에겐 이러한 과정조차도 일종의 ‘시선’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익명의 시각 장애인 C 씨는 자신이 장애가 있는지 훑는 역무원의 시선에 C 씨는 불쾌함을 경험했다. C 씨가 장애인 교통카드를 찍자 역무원이 가까이 다가와 눈동자를 본 후 C 씨가 장애인이라고 확신했다. 신분증조차 보지 않은 채 자신을 장애인으로 구분하는  태도에 상처받은 것이다.

장애인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 내부로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없는 지하철에는 이들이 계단을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휠체어 리프트’가 존재한다. 휠체어 리프트를 타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갈 수 있도록 소리가 나온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주변인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그들은 대개 사람들의 집중에 민망함을 느껴 고개를 푹 숙이며 다닌다고 한다.
 

◆ 시선의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장애인을 향하는 시선으로 인한 차별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장애인을 향한 시선의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 팀장은 “우선 장애인을 동등한 관계로 바라보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낮은 수준의 장애인 인권을 높이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다른 점은 단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뿐이다”며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시혜적 혜택을 주기보다는 양측이 함께 나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 팀장은 장애인 인권을 높이기 위해선 피해자 위주의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모든 논란은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는 “더욱이 약자인 장애인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와 기반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장애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인식하고 인권 수준을 높인다면, 더 나아가 장애인을 위한 법 제정까지 가능해진다면 지금의 사회를 지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시몬느 소스는 “궁극적으로 ‘다름’의 시선을 ‘닮음’의 시선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과 우리의 다른 점을 부각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점을 부각하려는 시선이 사회에서 소수자를 분리하거나 소외시키는 현상을 만들어낸다”며 “타인을 바라보는 ‘있는 그대로’의 시선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소수자를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다”고 설명했다.

“완전히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나와 근본적으로 무관한 사람도 없다. ‘오로지 하나의 인류가 있을 뿐’” 그는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에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에게 인류는 “모두가 닮지도, 다르지도” 않았다.
 

*백색증 : 멜라닌 세포에서의 멜라닌 합성이 결핍되는 선천성 유전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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