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1984」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몰락해가는 한 인간의 심리와 갈등을 날카롭게 그려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 속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는 빅브라더를 내세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며 당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주인공은 이러한 체제에 반발하지만, 결국 파멸한다. 이 소설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비단 전체주의 사회의 위험을 경고하는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은 거대 체제 하에서 고뇌하는 인간 내면의 격동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덮고 ‘나’의 행복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구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미의 작은 섬나라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1948년 코스타리카의 대통령이었던 호세 피게레스가 군대를 없앴고, 국방비를 교육과 복지에 돌렸다. GDP는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국민들의 생활 만족도는 세계 1위다. 반면에 통계와 수치 자료만 보면 행복한 나라 한국,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2016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공권력은 국민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권력이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일이 차고 넘친다.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포기함으로써 권력을 포기했고, 국민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권력은 <반지의 제왕>의 반지와 닮았다. 애초에 좋은 의도로 가졌을지라도 그것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면 부패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바른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1984」속 노동자들은 무지하다. 주인공은 이들이 결집하면 당을 쓰러뜨릴 것이라고 믿지만, 그들은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체제는 진화해도 시민은 배우지 못하면 진화할 수 없다. 한편 코스타리카의 아이들은 토론을 통해 도덕 교육을 받고, 어릴 때부터 모의 투표를 실시하며 바른 시민 의식을 함양한다.

요즘은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언론이 시민의 눈은커녕, 정부의 입술이 돼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 권리가 있다.「1984」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젊은 지성인들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건희(한국어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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