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2일(월),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난 김윤철 예술감독이 본인의 연극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혜민 기자>

본교 정문에서 걸어서 17분이면 만날 수 있는 ‘서계동 국립극단’. 1950년에 설립된 국립극단은 67년째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온 극단으로, 본교 근처에 있는 ‘소극장 판’과 ‘백성희장민호극장’, 명동에 자리 잡은 ‘명동예술극장’까지 총 3개의 극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이곳 국립극단의 총괄책임자로서 극단에서 상영할 작품을 선정한다. “비평가 시절, 날카로운 기준을 두고 연극을 평가했던 것처럼 국립극단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면서도 대중성과 예술성을 갖춘 연극을 다룰 것이다”는 포부를 드러낸 김 감독. 배우와 비평가를 거치며 한평생 연극만을 바라봐 온,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을 만나봤다.

◆ 연극인으로서의 삶은 계속된다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이 되기까지 김윤철 예술감독은 연극 배우, 비평가 등 연극과 관련된 다양한 길을 걸어왔다. 그의 연극 인생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우연히 읽은 희곡 한 편에서 시작됐다. 친구들과 함께 연극부를 만들어 활동하던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할 정도로 연극에 빠져들었다. 김 감독은 “모범생이었던 내가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연극을 한다고 하니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었다”며 “‘대학에 진학만 하면 연극 활동에 관해선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해외 연극 번역부터 연극 비평, 연기까지 김 감독은 연극과 관련된 일에는 언제나 다재다능했다. 대
학교 4학년 때에는 미국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공연하는 연극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던 시절, 김 감독은 팬레터를 받는 소위 ‘스타 배우’였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번역해 우리나라 최초의 해체극을 만들었다. 또한 주인공 ‘햄릿’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무대에 모든 열정을 쏟았으나 그 연극은 배우 김윤철의 마지막 공연이 됐다. 강행군 속에서 이어진 연습 탓에 공연이 끝나자마자 성대를 수술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던 당시, 성대를 다쳐 목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는다는 건 배우라는 꿈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의미했다. 역설적이게도 연극에 대한 열정이 김 감독이 품은 배우의 꿈을 막은 것이다. 김 감독은 “배우를 포기하면 연극인으로서의 삶은 완전히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아픈 기억이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연극 배우로서의 그의 삶은 끝났지만 연극인으로서의 삶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김 감독은 이후 연극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자 미국 유타주의 브리검영대학교(Brigham Young University)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시절, 김 감독은 연극에 대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었다. ‘배우는 개성을 가지고 연기하고, 연출가는 뜻을 가지고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본인의 예상대로 진행되는 연극에 대해 훌륭하다고 평가하던 그에게 한 교수는 “예상한 대로 연극이 나왔기에 오히려 잘못된 것이다”며 그의 비평을 지적했다. 예측한 대로 나오는 뻔한 연기와 연출은 좋지않다는 교수의 말은 그에게 연극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줬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앞에 펼쳐진 건 연극 비평가로서의 길이었다. 지인들은 그에게 비평가가 되길 권했다. 김 감독은 “내게 한국 비평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며 믿음을 주었던 주변 사람들 덕에 비평가로서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비평가가 된 이후, 국내 비평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 “가장 이상적인 예술의 기준으로 연극을 평가하는 것이 평론가가 할 일이다”고 말하는 그는 배우의 연기와 연출 등 연극에서 실재하는 분야에 대해 혹독하게 비평했다. 희곡 주제와 같이 문학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문학가로서의 비평가들과 그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촌철살인과도 같은 그의 독설은 주변 예술인들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연극을 바라보는 수준을 낮춰서 ‘이 정도면 잘했다’고 타협하는 것은 비평가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잘못된 건 정확히 지적하며 바른말을 할 줄 아는 비평가였다. 그는 “많은 예술가들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나를 정직하다고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내 비평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이 된 지금도 그는 비평가로서의 시각을 갖고 있다. ‘비평가 출신 예술감독’의 조언에 연극인들은 이전보다 더 긴장한다고 한다. 비평가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연극인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진 방관자적 입장에서 바라봤다면, 오늘날 그는 함께 연극을 만들어나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상적 예술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이상적 연극을 꿈꾸다
김 감독이 꿈꾸는 이상적인 연극은 ‘우리 사회의 필요에 의해 제작됐으며, 배우가 중심이 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연극’이다. 연극은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를 갖춰야 한다. 이때 대중성이란 연극이 시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주제를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김 감독은 연극이 ‘사회적 예술’이기 때문에 연극에서 사회 현실이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중성을 외면하고 예술성만 추구하는 건 개인을 위한 예술이다”며 연극에 있어서 대중과의 효과적인 소통을 강조했다.

“배우도, 연출가도 장기적인 기획과 틀 안에서 연극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 감독은 장기적인 기획을 거쳐야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온다며 우리나라 연극계에 만연한 ‘빨리빨리’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배우가 예술에 대한 열망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성공하려고만 한다”며 일침을 가하는 김 감독. 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해야 진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며 “예술을 향한 사랑이 부족한 배우는 실력을 키우기보단 성공에 대한 조바심에 대중의 사랑만을 갈구하게 된다. 결국 대중의 짧은 관심만 받는, 일명 ‘반짝스타’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김 감독은 현대 연극이 기초 예술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연극이 TV드라마와 같은 타 장르를 흉내내기 시작할 때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며 “예술의 본질인 연극을 바깥에 있는 타 장르로 변화시키려한 시도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덧붙여 연극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기초 예술로서 연극의 힘을 소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강조했다.

◆ ‘도전’의 해, 국립극단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갖춘 연극’이라는 신념에 부합하는 연극을 선보이기 위해 그는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2014년 김 감독이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향후 3년의 계획과 극단의 방향성을 이야기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응시’ ‘구속’ ‘도전’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극단의 한 해를 좌우하는 큰 주제로 선정했다. 2014년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통해 본인을 똑바로 인식하는 ‘자기응시’, 2015년엔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됐으나 해방후에도 자본주의에 구속되지는 않았는지 경계하자는 ‘구속’, 2016년엔 진정으로 해방된 자만이 도전에 응할 수 있다는 ‘도전’이다. 그는 “올해의 주제가 ‘도전’인 만큼 연극의 미학적인 도전과 함께 제작 방식이나 기획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올해 국립극단에서 김 감독이 시도할 세 가지 도전은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우리 연극의 해외 수출과 해외 연출가와의 협업’ ‘창작극 개발’이다.

그는 부임하던 해부터 한국 근현대 연극사의 명작들을 다시 무대에 올리고 있다.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 또한 국립극단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에는 근대와 현대의 동시대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국 대표 극작가인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등 근현대 극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국내 작품의 해외 진출’과 ‘해외 연출가와의 협업’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김 감독은 “해외 연극인들이 갖고 있는 연극에 대한 개념과 정서가 한국 연극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연극의 세계화하고 해외의 좋은 연극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2016년 한국-프랑스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해 프랑스의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와 협력해 연극「빛의 제국」을 기획했다. 「빛의 제국」은 이달 27일(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마지막은 창작극 개발이다. 창작극 개발의 방법으로 김 감독은 기존에 존재하는 위대한 한국문학의 무대화를 추진 중이다. 김 감독은 “최명희의 「혼불」, 이승우의 소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작품을 연극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극은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의 한 표현이다” 김 감독은 “사람을 성찰하게 하면서 미학적으로도 만족시킬 수 있는 연극이 훌륭한 대본과 배우를 만나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볼 때면, 연극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런 행복을 만드는 것이다. 한평생 연극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김 감독. 그는 앞으로도 본인과 관객들을 위해 ‘행복한 연극’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달려갈 것이다.

*해체극: 기존에 원래 있던 작품을 새롭게 구성해 새로운 내용으로 만든 연극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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