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만 있다면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요. 물론 화장실을 갈 때는 빼고요” 이다빈(한국어문 13) 학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스마트폰과 함께라면 이 학우에게 집은 늘 즐거운 공간이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들,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집에서 즐기는 이들을 우리는 ‘집순이’라 부른다. 집순이에게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거나 하루 종일 TV를 시청하는 것과 같은 일상이 충분히 즐거운 취미활동이다. 스스로를 집순이라 소개하는 학우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순이 현상에 대해 알아보자.

일상의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려고 하는 집순이들이 증가하면서 집순이는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집순이의 특징이나 하루 일과를 재구성한 만화와 글이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집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을 모아뒀다가 외출했을 때 한 번에 해결한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침대 위에서 생활할 수 있다’ ‘집에 혼자 있어도 따분함을 느끼지 못한다’ ‘친구들을 집 밖에서 만나는 것보다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좋다’ 등 게시글에 나열된 집순이의 특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래픽=윤나영 기자>

▶ 집순이, 은둔형외톨이와는 달라
외출보다 집 안에서의 생활을 선호하는 집순이들은 폐쇄적인 성향을 지닌 걸까. 집순이 현상은 ‘은둔형외톨이’라 불리는 이상심리 현상과는 다르다.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거부하며 집 안에 칩거하는 은둔형외톨이와 달리, 집순이는 외부와의 소통을 꺼리지 않는다. 집순이는 단지 집을 자신의 활동 공간으로서 집 밖보다 선호하는 것뿐이다.

이 학우는 스스로를 ‘외향적인 집순이’라 소개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이 학우가 집순이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외출 준비의 번거로움’이다. 이 학우는 “외출하기 전의 준비과정이 귀찮게 느껴져 집에 있는 것이 좋아요”라며 “번거로운 준비과정만 생략된다면 외출하는 것이 불편할 이유가 없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집을 휴식의 공간이자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 학우는 주변에 집순이 친구가 있다면, 친구의 집에서 약속을 갖는 것을 추천했다.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며 드라마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것,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시켜먹는 모든 즐거움이 집 안에서 가능해요” 이 학우는 집에서의 생활이 외롭지 않다. 그녀는 “집에만 있는 것이 결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라며 “집에서도 스마트폰 등을 통해 얼마든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요. 외로움을 느낄 만큼 외부와 격리돼 있는 건 아니죠”라고 말했다.

권호정(영어영문 13) 학우 역시 사람과의 만남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 외향적인 집순이다. 권 학우는 집 밖에서의 생활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가 스스로를 집순이라 칭하는 이유는 단지 집에서 취하는 ‘휴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침대를 사랑하는 ‘휴식형 집순이’다. “단순히 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엎드려 영화를 보기도 해요. 아이스크림같은 간식을 챙겨먹을 때도 있죠” 강아지를 껴안고 낮잠 자는 것도 좋아한다는 그녀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 좋다고 말했다. 권 학우에게 집에서의 생활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평화를 누리는 행위다.

▶ 집순이가 불러온 새로운 문화 트렌드
집순이가 늘어나면서 국내시장의 소비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소셜커머스 ‘티켓몬스터’에서는 지난 1월 ‘새해 결심 상품 판매추이’를 공개했다. 자료에 의하면 집에 설치해 이용하거나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자기계발상품의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집 안에서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는 ‘스텝퍼(Stepper)’의 매출은 전년대비 173%, 온라인 외국어 교육상품의 매출은 502% 증가했다.

집순이 소비자가 집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스스로 놀이처럼 간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일본의 DIY 간식 제품인 일명 ‘가루쿡’의 국내수요가 증가했으며, 작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만드는 ‘컬러비즈’도 집순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말, ‘LG하우시스’는 2016년의 실내장식 키워드로 ‘홈스케이프(Homescape)’를 꼽았다. 영단어 ‘home’과 ‘escape’를 결합한 단어인 홈스케이프는 “집에서는 각박해진 세상을 잊자”는 표어와 함께 실내인테리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집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수요도 늘어 셀프인테리어를 주제로 한 ‘헌집줄게 새집다오’ 등의 예능프로그램, 일명 *‘집방’도 인기다.

강명지(경영 13) 학우는 ‘나노블럭’과 ‘컬러링북’을 통해 혼자서도 즐거운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 학우는 집순이 생활이 심심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여가생활에 다른 사람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강 학우가 집순이가 된 것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평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컬러링북을 구매했어요” 어른들을 위한 색칠공부책으로 알려져 있는 컬러링북은 색칠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최근 세계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이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 (The Guardian)’은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서 컬러링북을 조명하기도 했다. 강 학우는 컬러링북을 색칠하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을 갖는다. 그녀는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칠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라며 “휴대 가능한 워터브러시를 구매해 물감으로도 컬러링북을 색칠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노블럭도 집순이 강 학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나노블럭은 조립할 때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 학우는 “완성된 결과물을 볼 때마다 뿌듯해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취미생활에 만족감을 표했다.

▶ 혼자만의 생활에서 안락함을 얻는 집순이
집순이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혼자’만의 생활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들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재작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5세 이상의 남녀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 국민여가활동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56.8%가 여가활동을 ‘혼자서’ 한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한 ‘가족과 함께 여가시간을 보낸다’는 응답보다 24.7%p가량 높은 수치다.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오히려 외로움을 느낀다는 신지현(미디어 14) 학우. 신 학우의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거주해 친구들과의 만남은 열에 아홉 서울에서 이뤄진다. 인천에서 통학하는 신 학우에게 서울을 오가는 과정은 큰 체력소모가 요구되는 일이다. 그녀는 “힘들게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면 이미 지쳐 차라리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라고 말했다. 힘들게 간 약속이었지만 마음껏 놀 수도 없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일찍 헤어져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은 무척 외롭다. 쓸쓸한 마음에 이런저런 불편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기분은 더 가라앉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하루 동안 실수한 것은 없는지부터 시작해 과거에 잘못했던 일들, 실수했던 일들, 창피했던 일들 등 즐겁지 않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요” 이에 그녀는 대인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고민을 줄이려면 집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이 감탄할 만큼 저는 ‘혼자 놀기 대마왕’이에요” 스마트폰과 충전기만 있다면 혼자서도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신 학우.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음식 방송을 찾아보거나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활동을 할 때도 많다. 신 학우는 집 밖의 상황들로 인한 불편함를 피해 오늘도 침대 안으로 파고든다. “누워서 과자를 먹을 때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아요”라며 그녀는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에 본교 김봉환 학생생활상담소 소장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환경을 피해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를 현대사회에서는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개발하는 과정에 갈등과 스트레스 요인이 늘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사회·경제적 원인으로 집순이를 택하기도 해
재작년 ‘LG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보고서 「한국인의 여가, 양적·질적으로 미흡하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통근·통학시간을 포함한 생산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이는 곧 여가시간의 부족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고단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쉽게 피로해진 심신을 휴식에 맡기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상에 피로를 느낀 사람들은 적은 비용으로 집 안에서 편히 쉬는 것을 훨씬 선호하게 됐다. 실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여가활동은 ‘TV 시청’으로, TV 1회 시청에 드는 비용은 평균 197원이다. 이는 다른 여가활동에 드는 비용과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값이었다. 한편 여가시간에 친구와의 만남을 갖는 것에는 평균 27,276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TV 시청으로 휴식을 취하는 데 드는 비용에 무려 138배에 달하는 수치다.

“외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돈 등의 비용이 부담돼요” 임세라(생명과학 14) 학우는 밖으로 향하는 것 대신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을 택했다. 집에서는 혼자이기 때문에 옷을 갖춰 입을 필요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또한 외출 준비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을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집에서는 시간에 쫓길 일이 없어 여유로워요”라고 말했다.

▶ 집,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공간이 되다
김 소장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계획적으로 이용한다면, 집순이 생활이 오히려 사회생활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김 소장은 “집순이에게는 집이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죠”라며 “스스로를 관리하는 시간이 꾸준히 축적되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향상돼 집 밖의 환경에 적극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집이 휴식뿐만 아니라 성장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김 소장의 말처럼 집순이들은 집에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스스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의 가치관은 어떻게 형성됐는지’ 고민하는 강 학우는 “자신에 대해 잘 알면 자신감이 생겨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무분별하게 따라 하기 쉽다며 “스스로에 대한 사색은 소신 있는 선택을 가능하게 해요”라고 말했다. 신 학우 역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허투로 사용하지 않는다. 신 학우는 “집에서 책을 자주 읽어요. 독서를 하면서 진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집순이를 집에서 게으름만 피우는 우울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집순이에게도 자신만의 사고와 세계가 있으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집순이 생활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집에서 휴식과 유희를 즐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등의 문제의식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자신의 목표를 위해 활용한다면 스스로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스스로를 재충전하거나, 안락한 개인만의 문화를 새로이 개발하는 집순이들. 최근에는 집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자신의 일상을 SNS에 공유하는 집순이도 늘고 있다. 이러한 집순이 현상은 방송, 인테리어, 소비 등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를 좌우하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집순이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도,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도 아니다. 야외 활동보다 집 안에서의 활동이 더욱 즐겁고 편안한 사람일 뿐이다.

집순이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집순이는 새로운 문화현상의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다.

*집방 : 집을 인테리어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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