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김경주 기자>

두만강을 건너 한국에 온 지도 벌써 14년째, 여전히 A씨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다. 35만 원짜리 좁은 월세 방에서 생활비를 아끼려 허리띠를 졸라매도 목돈 마련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누구보다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국가로부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이기 때문이다.

오랜 타향살이 끝에 도착한 한국이지만 사회로부터 소외된 채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14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A씨. 우리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국민으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80% 이상이 신고 지연자

기본적인 지원조차 받지 못해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포용하는 제도 마련돼야

◆ 둥지를 잃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이란 한국 입국심사과정에서 ‘비보호’ 결정을 받은 북한이탈주민을 의미한다. ‘보호’ 결정을 받은 북한이탈주민에게는 국가로부터 여러 지원이 제공되는 것에 비해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정착지원법)’에 따라 지원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북한이탈주민은 어떤 기준에 따라 ‘비보호’ 결정을 받는 것일까. 정착지원법에 따르면 비보호 결정 기준은 ▲항공기 납치, 마약거래, 테러, 집단살해 등 국제형사범죄자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 ▲위장탈출혐의자 ▲체류국에 10년 이상 생활 근거지를 두고 있는 사람 ▲국내 입국 후 1년이 지나서 보호 신청한 사람 ▲보호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 총 6가지다. 이 중 대부분의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은 국내 입국 후 1년이 지나서 보호 신청한 경우다. 북한인권정보센터 김보라 연구원은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80% 이상이 1년이 지나 보호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 이유로 정보 부족과 위장 신분을 꼽았다. 이들은 정부의 북한이탈주민 지원 정책을 알지 못할뿐더러 탈북 과정에서 신변의 위협 때문에 만든 위장 신분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입국한 후 신분을 위장한 것이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입국 신고를 하지 않아 결국 비보호 결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1년’이라는 기간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만 정부가 이와 같이 제한을 둔 이유에 대해 김 연구원은 “1년 동안 본인이 보호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위장탈출혐의자처럼 다른 목적이 있거나 1년 동안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라 사료된다”고 말했다.

통일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8월까지 집계된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은 172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연구자료, 기사 등을 살펴보면 실제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400-50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을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려운 이유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들이 스스로 비보호 결정자라고 밝히기를 꺼려하며 이들을 관리하는 공식적인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부담

비보호 북한이탈주민과 달리 보호 결정을 받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여러 기관에서 도움을 받는다. 먼저 국가로부터 2,000만 원 상당의 정착지원금이 약 5년간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분할 지급된다. 또한 주거 공간이 없다면 국가의 무상임대주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지병이 있다면 의료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관련 보조금도 지급된다. 이들의 사회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통일부 소속기관 ‘*하나원’과 지역사회에서는 사회 적응과 취업을 위한 교육과 함께 소정의 교육비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에게 주어지는 지원과 혜택은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에게 주어진 혜택은 하나원 퇴소 후 남북하나재단에 인적사항을 제출한 후 받는 긴급생활지원금 100만 원과 한국 사회 정착을 위한 교육이 전부다. 이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들이 국내에서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김 연구원은 “일반 북한이탈주민은 비교적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은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지원금을 받지 못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주거 문제다. 실제로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발표한 「비보호 북한이탈주민 및 제3국 출생 청소년 실태조사(2015.12)」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10명의 비보호 북한이탈주민 모두 전월세 집이나 보호쉼터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하나재단에서 발표한 「2014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2015)」의 북한이탈주민 중 78.5%가 국가가 제공하는 무상임대주택에 거주한다는 조사 결과에 비춰볼 때,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근로 소득 또한 넉넉지 못하다.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월평균 급여는 64.6만 원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월평균 급여 147.1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보호 북한이탈주민 및 제3국 출생 청소년 실태조사(2015.12)」가 소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에겐 병원비조차도 큰 부담이다. 김 연구원은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은 의료 급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의료비가 부담된다”라며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비보호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도 크다. 김 연구원은 “자신이 비보호 결정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건 대개 일반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있는 하나원 교육 기간 중이다”며 “이 때 비보호 결정을 받으면 주변에서는 비보호 결정자들이 뭔가 잘 못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비보호 결정의 기준에는 신고 지연자와 함께 중범죄자, 위장탈출혐의자 등도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비보호’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주변에서 비보호라 불리는 낙인 때문에 북한이탈주민 사회와 멀어지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 사회 적응을 위한 기본적인 지원이 필요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해 남보다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들.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국가는 이들을 지원할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김 연구원은 “대부분의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이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극히 일부는 여유 있게 살기도 한다”며 비보호 북한이탈주민 중에서 지원 대상자를 가려내는 일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원은 필수적이다. 김 연구원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의식주 문제다”라며 “초기 정착과정 동안 최소한의 생활지원과 의료지원 서비스 제도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에 가장 밀접한 의식주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은 무력감과 좌절감을 경험하고 한국 사회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비보호 전문지원센터를 비롯해 비보호 북한이탈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주거시설과 적응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통합적인 관점에서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을 바라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김 연구원은 “현 제도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을 여러 혜택에서 배제하는 처벌적인 제도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을 처우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덧붙여 김 연구원은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정착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방치됐던 비보호 북한이탈주민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또 다른 사회 부적응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하는 시점이다.

*하나원 : 통일부 소속기관 중 하나로, 관계 기관의 합동신문이 끝난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정서안정 및 문화적 이질감 해소, 사회경제적 자립 동기 부여를 목표로 3개월 동안 사회적응교육을 실시한다.

**표본이 10명인 것은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을 직접 찾아내기가 어려우며,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비보호 대상의 정착지원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상 중 조사의 목적과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을 피면접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의 사례와 수·주거·근로소득·의료지원 실태는 북한인권정보센터의 「비보호 북한이탈주민 및 제3국 출생 청소년 실태조사(2015.12)」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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