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E.H.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의미도 중요성도 없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게 되거나, 아니면 선전문이나 역사소설을 쓰게 되는 것”을 경계했다. 역사가는 가치 있는 사실을 선택하며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숙대신보> 기자들에게 역사철학을 지닌 ‘역사가’의 역할을 기대하며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 기사에서 정확성은 의무다. 문장 표현 하나에도 신중해야 한다. 기자 출신인 김훈 작가가 『칼의 노래』 첫 문장을 쓰면서 “버려진 섬에도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두고 고민했다고 하지 않던가. 문장부호도 정확하게 표기해야 한다. ‘취재부장 칼럼’에서 인터뷰 단상을 다뤘는데, 인터뷰 기사를 쓸 때는 인터뷰이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을 ‘글’로 옮기는 일은 더욱 더 엄밀한 정확성을 요구한다. 취재 시 반드시 녹음을 하여 직접 인용할 경우 인터뷰이의 의사가 바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모든 기사에 문제의식이 살아 있어야 한다. 제1307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숙명인, ‘20대의 강박’에 지치다”는 현재 20대의 고민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없다”는 국정화 이슈를 다룬 사설 역시 의미가 있었다. <숙대신보>는 시대의 기록이자 사료이다. 숙명인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 거울 역할을 한다. <숙대신보>를 만드는 기자들은 무엇이 숙명의 역사에서 기록되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며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야 한다. “‘왜?’라는 질문과 동시에 ‘어디로?’의 물음을 제기”하는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독자위원 신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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