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한 대화]

금수저란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좋아 노력과 고생없이 부모의 풍족함을 누리는 자녀들을 뜻한다. 금수저 논란, 숙명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조은정(문화관광 13):

오늘날 세상은 돈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세상에서 돈을 가진 이가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혜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부모의 능력과 수완으로 금수저 혜택을 보는 자식은, 그들의 부모 입장에서는 부모의 노력에 대한 보상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차별에 있다. 단순히 비싼 차를 타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시샘이 아니라, 공공연한 사회적 혜택이나 우선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평가로 인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상황은 같은 세대의 자식들에게서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출발선상의 공평한 기회에 대한 자유는 보장돼야 하며, 특히 우리 세대를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부모 세대들의 보다 공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나주희(한국어문 14):
당초 수저계급론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등장했지만 이는 쉽게 과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수의 청년들이 자신들은 흙수저라고 자조한다. 흙으로 만든 수저는 아무리 견고하게 만들더라도 들어 올리는 순간 산산조각 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자신의 처지를 수저에 빗대 비관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이제는 ‘한번 흙수저는 영원히 흙수저’라는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구조적 개혁이 이뤄져야 할 때다.

이아영(생명과학 15):
수저로 사람의 계급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타인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정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단편적인 계급들로 나눌 수 있을까? 경제적, 사회적 측면의 세습이 분명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로 인해 그 자녀들이 명백하게 특권을 갖고 있고 이를 수저로 표현하는 행위는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몇 개의 기준을 가지고 계급은 나뉠 수 없을뿐더러 타인에 의해, 혹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계급을 정한다는 것이 과연 현대 사회에서 논의돼야 할 가치가 있는지 조차 의문이다. 

정빈(중어중문 13):
요즘 가장 많이 보이는 ‘0수저’(0 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금, 은, 동, 흙)란,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나뉘는 계급을 말한다. 계급이 나뉘는 현상 자체는 특이하지 않다. 어떤 사회든지 항상 어느 정도 지위의 차이는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독 계급을 ‘규정’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침체된 경제상황이 젊은 사람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이 ‘0수저’라는 용어는 굉장히 위험하게 느껴진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처럼 무엇이든 ‘이름을 불러주자 내게로 와 꽃이 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0수저’라고 규정지음으로써 무기력함과 좌절함을 마주하고 내면화할 것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논란이 금방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수저 안에 갇히기엔 우리의 가능성은 항상 무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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