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해 연말 교육부의 구조개혁 평가결과가 발표되면서 전국의 4년제 대학 158곳과 전문대 132곳이 A·B·C·D·E 등 다섯 등급 중 하나로 등급화 되었다. 교육부는 고교졸업자 감소에 대비해 대학 정원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고 있으나 대학교의 등급화를 공론화하는 것은 낮은 등급을 받는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칠 파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적 편의주의가 아닐 수 없다. 한 신문사에서 대학을 평가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학차원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밝히는 동시에 각 대학 분야별 특성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라고 하는데 그 평가기준이라는 것이 상당부분 그 대학의 재정과 연관되는 것이다. 어느 대학평가도 대학생, 졸업생들 당사자의 생각은 주요지표로 삼고 있지 않다.

정부와 신문사가 나서서 대학을 등급화 하는 것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고착되는 계층화, 양극화와 맞물려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계층이 정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준으로 각 개인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예단하고 있다. 대학의 등급화에서 사회의 관심 또한 위에 속한 사람들에 있으며 낮은 등급을 받은 대학에 속한 사람들이 받을 상대적 박탈감, 자괴감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서울대 재학생·졸업생만 가입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여학생이 9급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를 밝힌 글이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소신껏 선택한 것에 대한 지지와 함께 “서울대 학벌이 아까운 것이 아닌가.” 등으로 갈리고 있다. 또한 이를 두고 사람들은 서울대생의 열패감, 도전보다 안정을 택하는 젊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대학의 등급화는 상위에 속하는 학생의 취업선택에도 논쟁거리를 주고 있다. 그러나 모 밴드는 “나는 고졸이고 너는 지방대야. 계산을 좀 해봐”, “빚까지 내서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해도 취직 못하는 자식” 이라는 가사로 자신들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대학의 등급화에 따른 사회적 평가기준은 대학생들의 취업과도 연관성이 있다. 대학생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의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 교육부에서 평가하는 교육여건, 학사관리, 교육과정, 학사지원, 교육성과, 특성화 등의 분야의 지표로 그 대학에 속한 재학생, 졸업생이 사회에서 등급화 되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라는 이름으로 계층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고 있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신화가 되었다. 고착화되는 계층화사회에서 교육부, 신문사가 나서서 대학의 등급화를 공론화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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