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달 17일 부산대 고현철 교수가 대학교 건물에서 투신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총장 선임 방식을 구성원들의 직선제가 아닌 굳이 간선제로만 하라는 교육부의 압력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고 교수는 유서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고 썼다. 그는 자기희생의 목적이 직선제 자체가 아닌 대학의 자율성, 나아가 민주주의 수호에 있다는 점을 밝혔다.

교육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 또한 자율성 침해 소지가 높다. 사립대학 등 민간 영역에 정부가 나서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발전된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개입주의 정책이다. 이번 평가결과로 정부는 하위 대학에 재정지원,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 지원을 금지하고, 그밖의 대학에는 평가 수준에 반비례한 정원감축 비율을 권고했다.

재정 지원의 타당성을 위해 각 대학의 우수성을 측정할 필요는 수긍할만 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지원을 위한 평가가 아니라 거꾸로 구조조정을 위한 재정지원 활용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보조금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이용해 대학에 개입하고 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도, 총장 직선제 요구도 모두 정부가 원하는 바에 따를 경우에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전제를 지닌다. 'ACE 사업' 등에서도 정부가 원하는 정원감축을 약속할 경우 가산점을 준다. 등록금 인상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힘겨운 대학들은 한푼이 아쉬운 지경이다. 이 과정에서 학문의 존엄성이 훼손될 소지가 생긴다. 지난 4월 각 대학의 부총장 등 고위 보직 교수들은 이번 구조개혁 평가를 위해 강원도 오크밸리 리조트로 호출돼 면접평가를 치렀다. 학교를 대표하는 대학 교수들이 정부가 오라는 곳으로 달려가 줄을 서서 면접을 보면서 설명하고 해명하는 모습에서 초라해진 학문 현실을 발견한다.

총장 직선제가 학내 정치화를 야기하는 등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직선제는 대학 구성원의 자율성을 지키고 재단의 전횡을 막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이러한 양면성을 무시하고 직선제만이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입학 인원보다 대학 정원이 많아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냥 내버려두면 경쟁력 없는 대학은 저절로 퇴출될 것이다. 잘 되는 대학에 돈을 주고 안 되는 대학에 주지 않는 개입주의 방식은 구조적 불평등만 오히려 강화할 것이다. 지방의 우수 대학에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면 서울로만 학생이 몰려 지방 교육이 황폐화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민간에 내버려 둬서는 안 될 부분에서만 역할하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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