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수),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194차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가 열렸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수십 명이 집회에 참여해 그 뜻을 함께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존경을 담은 목소리는 빗줄기도 씻어가지 못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할머니들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자유 발언에 참여한 한 중학생은 마이크를 꼭 쥐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실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아직도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위안부’, ‘수요집회’와 같은 단어가 익숙하다고 해서 정작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는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수요집회를 통해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요집회란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로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다. 집회는 1992년 1월 8일(수)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으며 올해로 24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주최로 매주 수요일에 대한민국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며 연중 5만여 명의 인원이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24년이란 긴 시간동안 지속돼 온 수요집회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열렸다. 이번 집회에도 오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집회 시작 직전에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렸다. 모두 우산을 펴 비를 피하던 그때 한 남학생이 자신의 우산을 소녀상의 어깨 위에 올렸다. 덕분에 소녀상은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이내 소나기는 그쳤고, 여는 노래 ‘바위처럼’을 부르는 것으로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됐다. 이 날 집회에는 고양 덕양중학교, 영광 성지송학중학교, 인천 산마을고 학생들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일원 등 70여 명이 참가해 자리를 지켰다. 노래가 끝난 후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주도로 할머니들의 기운을 북돋고자 모두가 “할머니 사랑합니다” “할머니 힘내세요” “우리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참여자들의 힘찬 목소리에 김복동 할머니(89)와 길원옥 할머니(87)도 밝게 웃음 지었다.
윤 상임대표의 경과보고에 이어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시작됐다. 자유 발언에는 덕양중 강은솔 군, 송지성학중 김재진 군, 산마을고 장세미, 황정현 양,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위원장 손혜경 씨, 가톨릭대학교 강명석 씨, 고려대학교 평화나비 대표 강민수 씨가 참여했다. 교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는 덕양중 강은솔 군은 “진실은 숨긴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일본 정부에게서 공식사과를 받을 때까지 할머니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부위원장 송혜경 씨는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와 한차례 포옹을 나누고 발언을 시작했다. 서로를 꼭 감싸 안는 모습에 모두가 미소 지었다. 송 씨는 “힘든 시간을 견뎌낸 어머니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수요집회에 온 어린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이 문제를 기억한다면 분명히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을 것 이다"라고 말했다.

자유 발언을 대신해 직접 그린 그림과 손수 꾸며 쓴 편지를 할머니들에게 전달한 산마을고 황정은 양과 장세미 양도 있었다. 장세미 양은 “「20년간의 수요일」이란 책을 읽고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지금껏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후 성명서가 낭독됐다. “올해 70주년 8.15 광복절이 지나가도록 일본 대사관 앞에 서 있다. 일본에게 요구한 사죄는 아직까지 저 꽉 막힌 대사관 벽처럼 답답하게 묵살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에 위로를 전하는 성명서는 담담하나 처절했다. 성명서를 듣는 집회 참가자 모두가 그 울림에 집중했다. 정적 속에서 울려 퍼진 성명서는 앞에 서 있는 일본대사관의 대답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집회의 마지막 순서로 모든 참가자가 일본대사관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그 속에는 울분과 답답함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에도 일본대사관은 저번 주 수요일처럼, 작년 수요일처럼 답이 없었다.

단일 주제로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돼 온 시위는 의미 있는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14일(금), 일본 아베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에서 “전쟁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을 손상한 여성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를 언급한 듯하나 정확한 단어가 없어 당국에 대한 직접적 사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다. 아베총리가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일본 전체 인구의 8할을 넘었다”고 말했듯이 이제 전쟁을 겪은 세대보다 그렇지 않은 세대가 더 많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수가 줄었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책임이 함께 줄어든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에는 그들의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24년을 바랐다.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할머니 238명 중 191명이 사망하고, 47명만이 남았다. 이제는 정말로 그들의 목소리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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