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처음 만난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다 남자의 진솔한 대답을 들은 여자가 문득 말한다. “사실 좀 놀랐어요. 그냥, 음, 다들 쿨한 척하는 시대잖아요. 민수씨처럼 말하는 사람 처음 봐요.” 김영하 작가의 소설 <퀴즈쇼>에 나오는 한 장면인데, 얼마 전 책을 읽다 스쳐지나가는 한 줄의 대사에서 그동안의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됐다.

20대로 접어든 지도 벌써 4년째가 돼가면서 그동안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돌아보면 다들 ‘가벼운’ 관계로, 크게 기억 남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내가 만난 한 사람은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 과정에서 혹여나 기분이 상했거나 상처를 받았더라도 ‘쿨한 척’ 넘어갔다.

언젠가 하루는 이러한 인간관계에 회의가 들어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정리한 적이 있다. ‘아마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친구목록을 지우다 보니 300명이 넘던 카톡 친구들 중 150명만이 남았다. 씁쓸한 마음에 친구에게 말했더니 자신의 지인도 나처럼 카톡 친구정리를 하다 400명 중 80명이 남았다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쿨한 척, 가볍게 만나는 인간관계가 너무 당연해져 있었다. 사회가 각박해져서인지, SNS의 발달 등으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하던 예전과는 달랐다.

어찌됐든 변한 추세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필요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인간관계가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이번에 취재한 ‘숙명인의 행복지수 결과’만 봐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100명의 지인인지, 1명의 진정한 친구인지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서 150명이던 카톡 친구가 다시 300명이 넘었다. 이 중에는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다시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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