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필름이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무직이 아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영화과와 영상과를 통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릴레이 시위에 동참한 해당 학과 학생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 적힌 말이다. 참으로 씁쓸한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취업률로 예술을 평가하는 현실에 맞서 스스로 무직이 아님을 애써 증명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안타까운 상황은 예술 대학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예술문화 계열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과학 계열의 학과들 역시 낮은 취업률을 이유로 대학 내에서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몇 퍼센트의 학과 졸업생이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는가’로 각 학문의 가치가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학문의 가치에 대해 우열을 논하는 일도 있을 수 없을뿐더러, 모든 학문의 가치를 취업률이라는 잣대 하나로 평가하는 것 역시 황당한 일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대학에서 순수 학문을 전공한 학생들은 학자의 길을 걸으며 학문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학계에 큰 공을 세울 수 있다. 무직이 아님을 주장하는 영화과의 학생들은 앞날이 불투명한 비정규직의 삶을 살면서도 예술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그들의 열정을 바친다. 이들 모두의 공로와 열정, 진정성은 어쩌면 취업률을 훨씬 뛰어넘는 귀한 가치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그 본분을 잊고 취업을 위한 취업훈련소로 변해가고 있다. 교육부는 취업률을 지표로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결정하고, 심지어 교수의 재임용이나 승진에까지 취업률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학문이 가장 자유롭고 다채롭게 꽃펴야 할 대학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대기업의 입맛에 따라 맞추어지며 개성과 열정을 잃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취업사관학교로 변해버린, 껍데기뿐인 대학 안에서 시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와 같은 학과 통폐합 논란이 남 일 같지만은 않다. 취업률을 잣대로 한 학과 통폐합의 화살이 언제 나에게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학과 문학이 좋아서 대학에서 마음껏 배우고 공부하기 위해 현재의 전공을 선택한 학생으로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학과 통폐합 뉴스를 들으며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펜이 꺾이지 않는 한, 우리는 무직이 아니다’

김은희(한국어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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