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얼마 전 라디오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듣고 씁쓸해졌다.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20, 30대의 약 20%만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단다.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들이 무색해지는 결과였다.

어느 순간부터 저마다의 포부를 가진 젊은이들이 팍팍한 현실의 벽 앞에 자신의 꿈들을 하나 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경제적 측면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 침체라거나 일자리 축소라는 단어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됐다. 등록금, 책값, 식비, 월세 등을 해결하기도 벅찬데, 남들보다 더 가지는 것은 사치가 된 것이다.

지난 제1292호에서는 경제 불황으로 비싼 상품들을 사기 어려워지면서 비교적 저렴한 상품의 소비를 통해 만족을 얻는 소비트렌드인 ‘작은 사치’에 대해 다뤘다. 본교 학우들의 작은 사치를 알아보기 위해 각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받는다고 알렸고, 일주일간 학우들로부터 많은 문자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학우들의 다양한 작은 사치에 대한 문자들을 받으면서 참신하다는 생각도 들고 흥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씁쓸한 느낌도 들었다. 학우들이 말하는 작은 사치가 생각보다 훨씬 사소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케이스를 바꾸는 것이 사치라고 하는 학우들도 있었고, 음악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사치라고 제보한 학우도 있었다. 양말을 모으는 학우와 음반을 모으는 학우도 있었다. 학우들이 말하는 작은 사치라는 표현 속에는 자신의 소비에 만족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형편에 ‘용기를 내어야 살 수 있는 것들’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혹자는 작은 사치를 두고 ‘충동적 소비다’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하고, 혹자는 돈을 버는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어른들은 ‘작은 사치’라는 현상 자체를 바라보기 전에 큰 소비를 포기하고 작은 소비에서 만족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 적은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사치’라는 단어를 붙이는 우리들을 보고 안쓰럽다고 느낀 적은 없었을까. 미래에 부자가 되기 위해 저축을 하는 것이 허무맹랑한 일이 돼버려 작은 사치로 근근이 현실을 버티며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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