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동네 놀이터가 텅 비어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다들 가족끼리 소풍이라도 간 것일까. 그러고 보니 요 몇 년 사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네는 끊어진 채 수리도 전혀 되어있지 않고, 시소와 미끄럼틀은 칠이 다 벗겨져서 초라한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놀았던 놀이터가 조용하니 왠지 모를 씁쓸함이 번졌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늦은 시간까지 놀다보면 어디선가 아이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우리를 만나게 하는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다. 집에 계신 어머니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우리는 저녁밥과 놀이터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싸움에서 패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남은 사람들 끼리 그 놀이터에서 제일 높은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렇게 거의 매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중에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비밀이 소문으로 퍼지기도 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연휴, 사촌동생에게 줄 간식거리를 사 들고 큰집으로 향했다. 큰집에 도착하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삼촌, 숙모, 그리고 강아지까지 모두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런데 사촌동생이 보이질 않았다. 큰어머니께서는 학원을 마치고 곧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다. 거실에 앉아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며 TV를 보고 있는데 사촌동생이 집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돌아온 동생의 표정은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요즘 고민거리 없어?”라고 물었더니 “수학 성적”이라고 대답했다. 초등학생이 벌써 자신의 성적을 걱정하다니. 놀이터가 텅텅 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초등학생들조차 성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한창 뛰어 놀 나이에 책상에 앉아 자신의 수학 성적이나 걱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생들이 있어야 할 곳은 학원이나 공부방이 아닌 ‘놀이터’다.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소리를 지르며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한다. 언제든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놀이터가 동네마다 있는데, 정작 아이들이 없다. 나는 초등학생들이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

서정현(경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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